제1장. 브레이크는 사치다
서기 2099년, 네오-서울. 이곳은 자본도, 권력도, 심지어 인간의 수명마저 '속도'로 치환되는 광기의 도시다.
모든 상거래와 정보의 이동은 기업 연합이 통제하는 '메가 넷'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결코 온라인에 남겨서는 안 될 더럽고 치명적인 물건들은 언제나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러너(Runner)'들의 몫이었다.
[경고. 제한 속도 250km/h를 초과했습니다. 감속하지 않을 시, 방위 드론이 요격 모드로 전환됩니다.]
헬멧의 HUD(헤드업 디스플레이)에 붉은색 경고 문구가 점멸했지만, 김과속은 오히려 가속 그립을 쥔 오른손에 더욱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가 타고 있는 낡지만 극단적으로 개조된 바이크 '레드라인'의 듀얼 배기구에서 푸른색 플라즈마 화염이 길게 뿜어져 나왔다.
"감속은 무슨. 내 사전에 브레이크는 사치다."
김과속의 입가에 날카로운 미소가 번졌다. 그의 뒤로는 네오-서울 치안 유지국의 무인 드론 세 대가 쇳소리 섞인 제트음을 내며 추격해 오고 있었다. 그가 오늘 배달해야 할 물건은 하층 구역 빈민가에서 상층부의 부패한 간부에게 전달되는 고농축 불법 스팀팩. 배달 기한은 앞으로 정확히 3분 남았다.
퍼엉-!
가장 선두에 있던 드론이 쏜 EMP 탄환이 김과속의 바이크 꼬리 바로 뒤에서 터졌다. 아스팔트가 파이며 스파크가 튀었지만, 김과속은 차체를 거의 바닥에 닿을 듯 눕히며 믿을 수 없는 각도로 코너를 파고들었다. 타이어와 노면이 마찰하며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냈고, 공기마저 찢어질 듯한 진동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직선 주로에선 내가 밀려도, 골목에선 어림없지."
코너를 빠져나오자마자 그는 바이크에 장착된 1차 부스터 스위치를 망설임 없이 눌렀다.
'쾅!' 하는 폭음과 함께 레드라인이 미사일처럼 앞으로 튕겨 나갔다. 300km/h를 가볍게 돌파하는 속도. 주변의 네온사인들이 형형색색의 빛줄기로 늘어나며 시야를 어지럽혔지만, 김과속의 동공은 그 속도를 온전히 따라잡고 있었다.
드론들이 궤도를 수정하기도 전에, 김과속은 빈민가를 가로지르는 좁은 폐공장 지역으로 진입해 버렸다. 장애물이 널려 있는 폐공장 내부는 인공지능 드론들이 계산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은 최악의 지형이었다.
결국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장애물과 충돌한 드론 한 대가 화염을 내뿜으며 폭발했다.
백미러로 그 광경을 확인한 김과속은 나지막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배달 도착 10초 전."
어두운 뒷골목 끝, 목적지인 낡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 서 있는 안절부절못하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김과속은 끝까지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가속 그립을 풀고 차체를 180도 회전시키는 스핀턴(Spin-Turn)만으로 바이크를 완벽하게 세웠다. 바퀴에서 뿜어져 나온 매캐한 타이어 연기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물건 확인해. 늦지 않았지?"
남자는 창백한 얼굴로 김과속이 던져준 은색 케이스를 받아 들었다.
"미, 미친놈... 정말로 경찰의 추격을 뚫고 3분 만에 주파할 줄이야."
김과속은 헬멧의 바이저를 살짝 올리며 씨익 웃었다.
"속도가 생명인 도시잖아? 잔금이나 제대로 입금해. 난 다음 배달이 있어서 이만."
바이저를 내리기 전, 김과속은 습관처럼 레드라인의 엔진 커버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플라즈마 잔열이 장갑 너머로 미지근하게 전해졌다. 부스터를 두 번 연속으로 쓴 날은 냉각 밸브가 버틸지 장담 못 한다. 하지만 수리비를 걱정하기엔, 하층 구역의 밤공기가 너무나 싸늘했다. 머리 위로는 상층부의 인공 조명이 별처럼 떠 있고, 발밑에선 오수 파이프가 쉴 새 없이 증기를 뿜어댄다. 이 도시의 바닥은 언제나 눅눅하고 뜨겁다.
그가 다시 헬멧을 내리고 레드라인의 시동을 켰다. 그 순간, 그의 HUD 시스템에 평소와는 전혀 다른, 검붉은 색의 기괴한 암호화 통신이 수신되기 시작했다. 발신자 불명. 오직 최상위 등급의 기업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 프로토콜이었다.
[의뢰 접수. 타겟: 메가-드라이브 코어 칩. 보수: 1천만 크레딧. 제한 시간: 15분. 수락하시겠습니까?]
하층 구역의 푼돈만 받던 배달부에게 떨어진 1천만 크레딧의 거액.
김과속의 심장이, 엔진의 진동과 함께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