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13장. 역설의 승리 (The Paradox Victory)

시계탑 최상층. '네벨의 심장'이라 불리는 거대한 수정체가 천장에 매달린 채 암적색 마력을 내뿜으며 요동치고 있었다. 수정의 맥동에 맞추어 바닥의 금속 격자들이 진동했고, 붉은 빛이 일행의 얼굴 위로 심장 박동처럼 명멸했다.

그 수정 바로 아래에, 조사 7국의 지휘관 '철면(Iron Mask)'이 서 있었다. 이름 그대로 철로 된 가면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고, 가면의 눈구멍 사이로 차가운 홍안이 빛났다.

"늦었군. 이미 고대 방어 체계 '아스트라이아의 눈'이 가동되었다. 이곳에 발을 들인 모든 생명체는 분자 단위로 분해될 것이다."

철면이 손가락을 튕기자, 천장에 매달린 수십 개의 마도 수정구가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각각의 수정구 안에서 살인적인 붉은 마력이 응축되고 있었다. 이안이 9서클의 안목으로 사선을 추적하니, 모든 수정구의 조준점이 일행이 서 있는 좁은 입구를 향해 교차하고 있었다. 피할 공간도, 막을 방법도 없는 완벽한 섬멸 진형이었다.

에스텔이 십자 대검를 앞세워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이안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사제님, 저건 물리 방어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분자 분해 마법은 갑옷이고 방패고 없이 모든 걸 먼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럼 어떡하죠?"

이안은 대답 대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수정구 하나하나의 마력 회로가 그의 눈에 설계도처럼 펼쳐졌다. 입력부, 증폭부, 출력부. 살상을 위한 회로였지만—구조 자체는 단순했다. 마력의 방향만 바꾸면, 기능 전체가 뒤집힌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저 높이에서 저렇게 많은 수정구의 핵심 노드를 건드리는 건 불가능했다. 강한 마력으로 때리면 수정구가 폭발한다. 정밀하지 않으면 회로가 뒤틀리기 전에 마력이 과부하된다.

하지만 이안의 마력은 1%였다.

아무것도 폭발시키지 않는, 그 어떤 회로도 압도하지 않는 마력. 수정구의 입장에서는 위협으로 인식조차 되지 않을 만큼 작은 신호. 그렇기에—안으로 스며들 수 있었다.

"카이, 시간을 버세요."

이안이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양손 손끝에서 실처럼 가느다란 마력의 선이 뻗어 나갔다.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섬세한 흐름이었다.

카이가 아무 말 없이 쌍검을 뽑아 철면 앞을 막아섰다.

챙-!

철면의 장검이 카이의 쌍검과 충돌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였다. 카이가 두 발이 바닥에 끌릴 만큼 밀렸다. 하지만 공간을 내주지는 않았다. 한 걸음 밀릴 때마다 절반 걸음씩 되찾으며 이안의 앞에서 버텼다.

이안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

첫 번째 수정구. 핵심 노드에 마력의 실이 닿는 순간, 이안은 회로의 구조를 손끝으로 느꼈다. 손가락으로 자물쇠의 내부를 더듬는 것과 같았다. 흐름을 파악하고, 방향을 바꾸고, 빠져나왔다.

삐지직-!

붉은 수정구 하나가 흔들리며 에메랄드빛으로 변했다.

이안은 다음 수정구로 마력의 실을 뻗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배후의 세 개는 회로가 연결되어 있었다—중앙 하나만 바꾸면 셋이 동시에 전환된다. 이안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뭐?"

철면이 천장을 보았다. 수정구들이 하나씩, 붉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안을 향해 돌아섰다. 카이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다시 검이 부딪혔다.

이안은 그 사이에서 묵묵히 마력의 실을 이어나갔다. 열 번째. 열두 번째. 충전 완료까지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이안은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르면 회로를 망가뜨린다. 망가진 회로는 역전되지 않고 폭발한다.

정확하게. 천천히. 1%의 마력으로.

"열다섯 번째—마지막."

이안의 손끝이 마지막 수정구의 노드에 닿았다. 흐름이 바뀌었다.

슈우우웅-!

천장의 수정구 전체가 일제히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었다. 뿜어져 나온 빛이 이안의 소진된 마력을 채우고, 에스텔의 갑옷 위로 두텁고 온화한 신성 보호막을 입혔다. 살상 병기가 그 기능을 통째로 뒤집어, 아군을 강화하는 장치가 된 것이다.

"뭐... 뭐냐! 왜 병기가—!"

철면이 당황하며 뒤를 돌았다. 그 순간 카이가 비켜섰다. 강화된 보호막의 빛을 온몸에 두른 에스텔이 그 자리를 채웠다. 자비가 허공을 크게 갈랐다.

"이안 님의 방식대로, 당신의 그 썩어빠진 사슬을 끊어드리죠!"

콰아앙!

십자 대검의 일격이 철면의 가슴팍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철면은 시계탑 벽을 뚫고 저 멀리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벽에 사람 형태의 구멍이 뚫렸고, 안개가 그 틈으로 소용돌이치며 밀려 들어왔다.

카이가 이안 쪽으로 걸어왔다. 이안은 천장을 올려다본 채 아직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전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마력이 아닌, 집중력이 풀린 탓이었다.

"살상 병기를 치유 장치로. 1%로."

카이가 말했다. 칭찬인지 관찰인지 알 수 없는 어조였다.

이안은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방향만 바꿨을 뿐입니다. 구조 자체는 변하지 않았어요."

에스텔이 뻥 뚫린 벽 앞에 서서 안개 너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저 심장을 어떻게 하죠?"

셋은 동시에 수정체를 올려다보았다. 네벨의 심장은 여전히 붉게 맥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