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17장. 안개 너머의 눈 (Eyes Beyond the Mist)

안개가 걷힌 네벨의 하늘은, 도시의 주민 대부분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시계탑 광장에 쏟아지는 햇살 아래, 사람들이 하나둘 집 밖으로 나와 서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수십 년간 안개에 가려져 있던 이웃의 진짜 얼굴을 확인하고는,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울음이 터지기도 했다. 광장 구석에서는 아이들이 처음 보는 파란 하늘을 가리키며 "저게 뭐야?"라고 물었다. 누군가가 "하늘이야"라고 대답하자, 아이들의 눈이 보석처럼 빛났다.

그 축제의 한가운데에서, 이안은 광장 계단에 앉아 조용히 안경을 닦고 있었다. 햇빛이 렌즈에 부딪혀 작은 무지개를 만들었지만, 그의 눈 아래에 짙게 내려앉은 피로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에스텔이 그의 옆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십자 대검를 바닥에 세워 놓자 돌계단에 가느다란 금이 갔다.

"몸은 괜찮으세요?"

"당신이 걱정해 주시니 오히려 불안합니다, 사제님. 보통 그런 말씀 뒤에 '자, 일어나세요'가 따라오거든요."

에스텔은 대답 대신 이안의 어깨를 톡 쳤다. 사제의 가벼운 격려는 이안의 상체를 30도쯤 기울게 했다.

"...든든하군요."

카이가 붕대를 감은 왼팔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다가왔다. 레온이 건네준 제국 내부 문서 뭉치를 오른손에 들고 있었다. 바람이 문서 끝을 펄럭이게 했고, 카이는 얼른 가슴에 꼭 안았다.

"레온이 말하길, 영혼 추출 회로의 설계도면 원본이 아크리움 황립 마도원에 있다고 한다. 네벨은 시작에 불과해. 제국 전역에 최소 여섯 개의 추출 거점이 더 있을 수 있어."

이안이 카이에게서 문서를 받아 빠르게 훑었다. 회로도의 양식, 마법진의 기법, 쓰인 마력 기호의 체계—모든 것이 현재와 달랐다. "이 회로 설계... 최소 300년 전 기술입니다. 누군가 제국 건국 초기부터 이걸 계획했다는 뜻이에요."

이안은 안경을 다시 쓰며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표정만은 평소의 나른한 무관심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크리움으로 가야 합니다. 설계도면 원본을 확인하면 나머지 거점들의 위치도 역산할 수 있어요. 다만 문제는..."

"뭔데?"

"출발 전에 주민들이 감사의 뜻으로 연회를 열겠다고 합니다. 거절하면 '안개를 걷은 은인들이 밥도 안 먹고 갔다'는 전설이 남을 테니..."

그날 저녁, 광장에는 즉석 연회가 펼쳐졌다. 수십 년간 창고에 묵혀 두었던 와인 통이 열리고, 거리에 수백 개의 등불이 켜졌다. 오랫동안 잊혀 있던 악사들의 바이올린 소리가 돌담 사이를 울렸고, 안개 없는 공기 속에서 그 음색은 유난히 맑았다.

주민들이 이안에게 감사의 선물로 가져온 것은, 네벨의 특산품인 안개 수정—마나가 응축된 반투명한 보석이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차가운 기운이 손금을 타고 스며들었다. 이안은 조용히 마력을 흘려보냈다.

7서클 마법, '에테르 리딩(Aether Reading)'. 출력 1%.

본래 이 마법은 대상의 마나 구조를 3차원 홀로그램으로 재구성하는 고위 감정 마법이다. 이안의 손끝에서 푸른 빛이 피어올랐고, 수정 위로 정교한 마나 격자가 아른거리며 떠올랐다. 광장의 사람들이 감탄사를 터뜨리며 모여들었다.

그러나 1%의 출력으로 구현된 홀로그램은 채 3초를 버티지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졌다. 이안의 손에 남은 건 수정의 분석 결과가 아니라, 수정 표면에 희미하게 새겨진 '양호'라는 글씨뿐이었다.

"...감정 결과, 양호입니다."

"그게 다예요?" 에스텔이 고개를 기울였다.

"7서클 마법으로 '양호'를 쓸 수 있는 마도사는 대륙에 저 하나뿐일 겁니다."

이안이 태연하게 안경을 치켜올리는 동안, 에스텔이 소리 없이 일어나 광장 외곽을 살폈다. 축제의 소란 속에서도 그녀의 감각은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이안."

에스텔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축제의 웃음소리가 여전한데도, 그 한마디가 이안의 귓가에 칼날처럼 닿았다. 이안은 그 톤의 변화만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있습니다. 30분 전부터요."

광장 맞은편, 붕괴된 건물의 그림자 속에 누군가가 있었다. 검은 로브의 후드 아래로 보이는 것은 턱 끝뿐이었지만, 가슴팍의 브로치—여명을 가르는 검은 태양 문양—가 등불 빛에 번뜩였다.

검은 여명회.

그림자 속의 인물이 품에서 통신 수정을 꺼내 낮게 속삭였다.

"표적 확인. '영점'이 네벨의 핵을 해체했습니다. 예상보다 빠릅니다. 아크리움 지부에 선행 배치를 요청합니다."

수정 너머로 갈라진 노인의 음성이 흘렀다.

"서두르지 마라. 영점이 시스템의 구조를 인식하기 시작할 때까지 관찰만 해. 우리가 필요한 것은 그의 목숨이 아니라, 그의 '좌표'다."

통신이 끊겼다. 검은 로브의 인물은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같은 시각, 에스텔이 십자 대검를 어깨에 올리며 이안에게 말했다.

"쥐 한 마리가 있었는데, 도망쳤어요."

"쫓지 않으셨군요."

"쫓으면 쥐굴을 못 찾죠. 아크리움까지 따라오게 두는 편이 나아요."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낡은 제국 지도를 펼쳤다. 네벨에서 아크리움까지, 약 800km. 중간에 교단의 성도 루미나를 거쳐야 한다. 접힌 자국이 닳아 구멍이 뚫린 지도 위로 등불의 불빛이 흔들렸다.

"내일 새벽에 출발합시다. 도착할 때까지 카이 님의 팔도 어느 정도 회복되겠죠."

카이가 부상당한 왼팔을 들어 보이며 씩 웃었다.

"이 정도면 이미 검을 쥘 수 있어."

"무리하지 마세요." 에스텔이 카이의 앞을 가로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에 당신 팔이 또 부러지면, 부러뜨린 상대를 제가 직접 처리할 테니까요. 그전까지는 제 뒤에 계세요."

그것이 에스텔 식 배려라는 것을, 일행은 이제 알고 있었다.

등불이 하나둘 꺼져 가는 네벨의 밤, 안개 없는 하늘에는 수십 년 만에 별이 떠 있었다. 이안은 별빛 아래에서 조용히 지도를 접으며, 아크리움이라는 이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손끝에서 미약한 마력이 무의식적으로 새어 나와, 지도 위의 글씨가 찰나 동안 푸르게 빛났다가 꺼졌다.

진짜 적은, 저 별들 너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