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작별과 재회의 약속 (Farewell and Promise)
이안은 숨을 헐떡이며 일어선 한스를 부축하는 에스텔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숲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아카데미를 떠나던 그 처절한 아침의 공기를 떠올리게 했다.
안개 낀 교정의 거대한 대리석 정문 앞에는, 단 한 사람만이 서 있었다.
"이렇게 떠나버리실 셈이세요? 제가 교수 회의에 탄원서를 올리겠어요. 당신의 마법 공식은 결코 실패작이 아닙니다. 이건 인류가 단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신의 영역이에요."
엘레나였다. 공작 가문의 이름을 걸고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새벽 안개 속에 서 있었다. 아카데미 최고의 수재이자, 그 오만한 자존심으로 유명한 그녀가 처음으로 무너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엘레나 님. 이론만으로는 이 상아탑의 성적표를 바꿀 수 없더라고요. 당신이라도 남아서 제 공식들을 증명해 주세요."
이안은 애써 담담한 척 웃어 보였다. 아카데미에서 보낸 5년간, 엘레나는 단 한 번도 이안의 결함을 비웃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엘레나는 그의 소매를 꽉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새벽빛에 젖은 대리석 계단 위로 그녀의 긴 그림자가 떨리며 흔들렸다.
"바보 같은 소리 마세요. 약속하세요, 이안. 어디에 있든, 어떤 비참한 모습이든 반드시 살아남으세요."
엘레나는 말을 마치며 떨리는 손으로 이안의 품에 작은 주머니를 쥐여주었다. 그녀의 손끝이 주머니에 닿는 순간, 천 사이로 새어 나온 희미한 푸른 고동이 이안의 피부를 스쳤다. 미세하지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고 깊은 마력의 맥동이었다.
"이건... 에테르나의 파편? 공작 가문의 금고에 잠들어 있다던 그 보물을 어떻게...!"
"쉿." 엘레나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던 건데, 제국에 존재하는 그 어떤 위대한 마법사나 마도구의 거대한 마력에도 단 한 번도 반응하지 않던 단순한 돌덩이였죠."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데 이안... 당신이 어제 시험장에서 그 빌어먹을 1%짜리 불꽃을 피워냈을 때, 제 품에 있던 이 파편이 처음으로 공명하며 빛을 냈어요."
이안의 숨이 멎었다. 제국 최고 수준의 9서클 마나에도 무반응이던 고대의 유물이, 자신의 실패한 마력에만 반응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마법이 가짜고, 어쩌면 당신의 1%만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엘레나가 이안의 옷깃을 끌어당기며 간절하게 속삭였다. "이 파편이 왜 당신의 마력에만 반응하는지... 살아남아서 반드시 그 답을 찾아내세요. 에테르나 유적을 찾으세요. 당신은 절대 낙제생이 아니니까."
이안이 더 거절할 새도 없이 그녀는 뒤돌아 뛰어갔다. 장포 자락이 새벽 안개 속으로 녹아들었고, 손에 남은 파편의 맥동만이 그의 심장 박동과 일치하며 뛰고 있었다.
"이안 님? 왜 멍하니 계세요? 이 불쌍한 양이 방금 깨어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군요."
에스텔의 목소리에 이안은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이안의 치료를 받고 간신히 의식을 차린 한스가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 고맙소... 하지만 오크셔 마을로는 웬만하면 가지 마시오. 숲의 고블린들을 저렇게 흉폭하게 만든 건 오크셔 영주요. 영주가 저택 지하에 끔찍한 그림자 괴물들을 숨겨두고, 숲에다 실패작들을 내다 버리고 있소."
에스텔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거대한 은색 십자 대검을 어깨에 멘 사제가 빙긋 웃었다. "이단의 뿌리가 영주 저택에 있었다는 뜻이군요. 좋습니다. 당장 그 지하로 가서 제 십자 대검으로 단단히 구원해 드리죠."
이안은 품속의 에테르나 파편을 꽉 쥐었다. 자신을 믿어준 유일한 사람, 그리고 1% 마력의 비밀을 풀기 위한 여정. 하지만 그전에 당장 엮이게 된 눈앞의 위협부터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네, 가시죠. 오크셔 영주의 저택으로."
아카데미의 낙제자와 교단을 탈주한 사제는 첫 번째 목적지를 오크셔 저택의 지하로 정하고, 어둠이 깔리는 숲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