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7국의 유령 (Ghost of the 7th)
서쪽 끝, 일 년 내내 햇빛 한 줌 들지 않고 짙은 안개에 잠겨 있는 도시 '네벨(Nebel)'. 축축한 공기가 폐부 깊이 파고드는 이 도시에서는 두 걸음 앞 사람의 윤곽도 희미했다. 돌바닥에 밴 이끼 냄새와, 어딘가에서 새어 나오는 하수의 악취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일행이 습한 안개 속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나아갈 때, 카이의 발걸음이 돌연 멈췄다. 그의 고개가 한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어졌다. 안대 너머로 보이지 않는 눈동자가 허공을 훑는 듯했다.
"나와라. 7국 특유의 역겨운 쇠 냄새를 숨기기엔 이 도시의 안개가 너무 옅군."
카이의 서늘한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짙은 안개 속에서 회색 코트를 입은 사내들이 유령처럼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들의 발걸음은 지면에서 떨어진 듯 기척이 없었고, 가슴팍에는 제국 재무부의 문장—암살 부대 '조사 7국'의 인장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붉은 녹이 슨 철제 문장이, 안개 속에서 핏빛처럼 번져 보였다.
"오랜만이군, 카이. 시력을 잃고 쫓겨난 주제에 그 예리한 청각은 여전하구나."
사내들의 중심에 선 리더가 비릿하게 웃으며 품에서 기형적인 쌍검을 꺼내 들었다. 칼날에 검은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카이는 안대 아래로 맹렬한 살기를 뿜어내며 단검을 고쳐 쥐었다. 좌우 손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오래 억눌러 왔던 분노였다.
이안은 그들의 대화와 살기를 통해, 카이가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한때 제국 최고의 암살 조직에 몸담았던 자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동시에 리더의 바로 뒤편, 흉터가 눈 위를 관통하는 한 요원이 눈에 들어왔다. 카이보다 한 뼘쯤 작은 체구에, 유독 카이를 향해 복잡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저들은 대체 누구죠, 카이 님?"
카이는 잠시 침묵했다. 대답 대신, 그의 턱이 한 번 굳게 조여졌다가 풀렸다.
"제국 조사 7국. 한때 내가 몸담았던 곳이자, 내 눈을 앗아간 자들이오."
담담한 목소리였으나, 그 짧은 문장 사이에 수년간의 배신과 고독이 응축되어 있었다. 에스텔이 분노 어린 표정으로 거대한 십자 대검을 바닥에 쿵 찍으며 앞을 가로막았다. 바닥에 방사형 균열이 뻗어 나갔다.
"동료를 배신하고 해치다니. 교단의 이단 심문관 시절에도 그런 역겨운 짓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직접 치워드리죠."
"물러서시오, 사제님. 이들은 당신이 부수던 마도 골렘과는 다르오. 7국의 암살술은 소리조차 베어내며 환영처럼 파고드는 기술이지. 물리적인 방어만으로는 막기 어렵소."
카이가 이안에게 마법적인 정신적 링크(Mental Link)를 통해 은밀하게 말을 걸어왔다.
'이안, 저들의 심장 박동이 들리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상층부의 지원을 받아 심연의 마력으로 신체를 변이시킨 모양이야. 자네의 마법 지도가 절실히 필요해. 저 괴물들의 진짜 "핵"이 어디 있는지 찾아줄 수 있겠나?'
이안은 차분히 안경을 고쳐 쓰며 안개 속에 흩어진 불길한 마나의 입자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9서클의 지식으로 조감한 적들의 체내는, 생명체가 아닌 마력 구동체에 가까웠다. 혈관 대신 검은 마력이 흐르고,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불규칙하게 맥동하는 이질적인 핵이 자리잡고 있었다.
"좌측 10보, 적의 리더의 가슴 한가운데가 아닌 명치 아래쪽을 노리세요. 그곳에 이질적인 마력핵이 있습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예요. 심장이 아니라 핵을 쳐야 합니다."
조사 7국과의 전면전이, 차가운 안개를 가르며 마침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