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4장. 레드라인, 임계점

빛 속으로 뛰어드는 건 미친 짓이다. 레이서는 원래 미쳤다.

블랙-하운드의 장갑차 두 대가 외벽을 무너뜨리고 돌진하며 헤드라이트를 풀로 켰다. 하얀 불빛이 처리장 내부를 대낮처럼 채웠다. 탐조등이 세 방향에서 교차하며 폐기물 더미 그림자를 춤추게 했다. 포위망. 완전 봉쇄.

김과속은 장갑차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레드라인의 배기구가 요란한 포효를 내뱉었다. 블랙-하운드 대원들이 당황한 무선 교신을 쏟아냈다. 정상인이라면 꺾어야 할 자리에서 김과속은 오히려 그립을 더 비틀었다. 100미터. 70미터. 50미터.

레드라인이 울부짖었다. 배기열이 허벅지를 다시 달구기 시작했다. 헬멧 바이저 너머로 장갑차 전면 그릴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운전석 안에 앉은 블랙-하운드 대원의 눈이 확장되는 것까지 보였다. 저쪽은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군 차량 사이를 뚫고 오는 적은 교전 매뉴얼에 없다.

[경고: 전방 충돌 감지. 충격까지 3초.]

30미터.

두 장갑차 사이의 간격은 4미터 남짓. 그 너머로 폐기물 컨베이어 벨트의 강철 가이드레일이 보였다. 낮은 각도로 튀어오르면 이론상 통과 가능한 루트. 이론상.

20미터.

김과속의 뇌가 각도를 계산했다. 장갑차 측면과 레드라인의 좌측 페그 간격.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을 때 생기는 미세한 궤도 이탈. 컨베이어 벨트 가이드레일의 경사각. 0.7초 안에 처리해야 할 변수가 열두 개였다.

0.7초.

충분했다.

김과속은 핸들을 오른쪽으로 1도만 꺾었다. 좌측 장갑차의 사이드 미러가 헬멧을 스치며 날아갔다. 금속 파편이 불꽃을 튀기며 시야 옆을 지나쳤다. 레드라인의 왼쪽 페그가 장갑차 측면 장갑을 긁으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충격이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골반으로 전달됐다. 뼈가 욱신거렸다. 그 찰나 컨베이어 벨트 위로 뛰어오르는 짧은 점프. 착지.

쿵.

서스펜션이 비명을 질렀다. 온몸이 아래로 눌렸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흔들렸다. 3G. 아니 4G. 장갑차 사이를 통과하는 그 찰나에 몸이 만들어낸 관성이 상체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배가 탱크에 박힐 뻔했다. 코어 근육을 죄어 버텼다.

벨트 위는 최악이었다. 녹슨 금속판. 화학 폐기물 잔해. 불규칙한 요철. 어디선가 흘러든 냉각수가 녹슨 쇠와 섞여 시큼하고 역한 냄새를 뿜었다. 폐처리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화학 슬러지가 벨트 표면에 검게 들러붙어 있었다. 타이어가 한 번 그 위를 밟자 바이크 뒷부분이 크게 흔들렸다. 미끄러졌다.

뒷바퀴가 30도 이상 옆으로 흘렀다.

타이어가 미끄러지며 방향이 흔들렸다. 김과속은 허리로 차체를 누르며 무릎으로 균형을 잡았다. 부스터 없이 순수한 무게 이동만으로 바이크를 벨트 위에 붙들어 맸다. 관절이 타는 것 같았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찢어질 듯 당겼다. 부츠 밑창이 벨트 표면의 튀어나온 철 볼트를 밟을 때마다 발바닥에 충격이 박혔다. 벨트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바이크와 반대 방향으로. 속도 차이가 미세한 저항을 만들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자세를 잡는다는 건, 이론적으로 가능한 것과 실제로 가능한 것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왼쪽 어깨가 욱신거렸다. 장갑차 거울에 맞은 자리다. 내출혈은 없어도 멍이 들었을 것이다. 나중 문제다.

[엔진 온도 임계치 도달. 냉각 밸브 잔량: 9%.]

9%.

처리장 출구 쪽 셔터가 보였다. 닫혀 있었다. 당연히 닫혀 있었다. 블랙-하운드가 봉쇄했을 것이다. 레드라인의 배기구 열기가 엔진 커버 너머로 허벅지를 달궜다. 뜨거웠다.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과열된 엔진 냄새가 헬멧 필터를 뚫고 미세하게 스며들었다. 금속이 달아오를 때 나는 쇠비린내. 냉각 유체가 타는 쿰쿰한 화학 냄새.

셔터가 40미터 앞이었다. 30미터. 그때 셔터 아래 틈새로 형광 보라빛 불빛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바이퍼였다.

"좋은 탈출 루트야. 마음에 들어."

스텔스 바이크가 소음 없이 컨베이어 벨트 옆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바이퍼가 셔터를 가볍게 손으로 밀어냈다. 전자 잠금이 풀린 셔터가 미끄러져 올라갔다. 3초. 그녀가 빠져나가자 셔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김과속은 셔터 아래를 납작하게 눕혀 통과했다.

통과하는 순간 셔터 하단 철제 프레임이 헬멧 정수리를 스쳤다. 1센티 여유. 그보다 높았으면 헬멧이 뜯겼다. 헬멧과 함께 목도 같이 뜯겼을 가능성이 높다.

외부의 차가운 공기가 갑자기 헬멧 필터를 채웠다. 폐기물 냄새가 희석됐다. 처리장 외곽 도로. 폐 공장 지대 서쪽 루트. 장갑차 두 대가 셔터 너머에서 방향을 바꾸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셔터를 뚫으려는 충격음이 울렸다. 무거운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블랙-하운드는 셔터를 장갑차로 밀어낼 것이다. 30초. 아니면 1분. 그 안에 레이더망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바이퍼의 바이크가 옆으로 붙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진짜로 아무것도. 엔진음, 타이어 마찰음, 기어 변속음. 없었다. 스텔스 전자기 차폐 시스템. 그것도 군용 등급. 김과속은 그 무음(無音)의 의미를 즉각적으로 파악했다. 블랙-하운드의 레이더가 저 바이크를 잡지 못한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다른 계산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바이퍼는 왜 소음이 없는가. 단순한 소음 차폐가 아니다. 소음이 없다는 것은 진동이 없다는 뜻이고, 진동이 없다는 것은 외부 전자 신호를 흡수하거나 차단하는 장치가 탑재돼 있다는 뜻이다. 레이더 탐지를 피하는 군용 스텔스 바이크. 처리장 안에서 블랙-하운드 탐조등이 스캔하는 동안 김과속의 HUD에 바이퍼의 신호가 포착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했던 게 아니라, 애초에 신호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전자기 교란 장치. 능동형 신호 억제. 그리고 그 억제 범위는 바이크 단독에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 일정 반경 내의 신호를 희석시킨다.

"거래 다시 하자. 5천만 크레딧. 에어-웨이 루트. 한 번 더 제안이야."

바이퍼의 목소리는 속도가 붙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헬멧 없이 탁 트인 바이저. 형광 보라색 빛이 속도 속에서 잔상을 남겼다.

김과속은 대답하지 않았다.

포위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블랙-하운드 레이더 드론이 상공에서 격자 패턴으로 훑고 있었다. HUD의 레이더 반응 표시가 두 개. 머리 위 120미터. 신호를 잡히는 순간 장갑차 지원 요청이 간다.

바이퍼의 스텔스 시스템.

전자기 교란 장치가 탑재된 스텔스 바이크. 반경 얼마짜리인지는 몰라도, 저 바이크 옆에 붙어 있으면 레이더 신호가 희석된다. 그리고 드론은 이동 목표를 추적할 때 가장 강한 신호에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

미끼.

바이퍼가 반경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레드라인의 신호가 드론에게 노출된다. 역으로 바이퍼가 레이더에 노출되는 방향으로 치고 나가면, 드론은 더 강한 신호를 쫓아 이탈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김과속이 블랙-하운드의 레이더망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거래는 거절한다."

"예상했어. 그럼 왜—"

"30초만 앞에서 달려줘. 레이더 잡힐 방향으로."

침묵.

바이퍼의 바이저가 살짝 돌아왔다. 형광빛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좁아졌다.

"...배달부치고 계산이 빠르네."

잠시 후 스텔스 바이크가 속도를 올리며 전방으로 치고 나갔다. 그 순간 레이더 반응이 바이퍼 쪽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드론 두 대가 신호를 쫓아 방향을 틀었다.

[레이더 차단 감지. 전방 드론 이탈 중. 잔여 시간: 28초.]

28초.

김과속은 HUD 지도를 스캔했다. 여기서 남서쪽 400미터. G-라인(G-Line) 진입 포인트. 구형 물류 루트. 메가-드라이브가 8년 전 폐쇄한 지하 가도. 그래서 블랙-하운드 레이더망에도 없다. 지도에도 없다.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도로.

그리고 냉각 밸브는 지금.

[냉각 밸브 잔량: 6%. 엔진 차단 경고. 즉각 감속 요망.]

6%.

엔진을 끄면 된다. 아니면 속도를 줄이면 된다. 합리적인 선택. 살고 싶다면.

김과속은 속도를 올렸다.

폐 공장 지대의 좁은 골목을 꺾을 때마다 페그가 지면을 긁었다. 불꽃이 튀었다. 엔진 커버가 뜨거워도 손은 핸들을 놓지 않았다. HUD의 엔진 온도 게이지가 빨간 구간을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레드라인이 데워진 금속판처럼 달아오른 채로 달렸다. 핸들 진동이 손바닥을 통해 팔뚝까지 올라왔다. 오른 엄지 관절이 이미 열에서 십 분 전부터 저리기 시작했다. 운전 중 손 감각이 둔해지면 직선에서도 미세한 궤도 오차가 생긴다.

무시했다.

350미터. 300미터. 250미터.

그때 전방 구조물 벽면에서 흰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산업용 폐증기 배출구. 주기적으로 고온 증기를 방출하는 냉각 환기 시스템. 네오-서울 하층 구역 어디에나 있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은 냉각 루트가 될 수 있었다.

엔진 온도를 내리는 방법. 1: 감속. 2: 냉각 유체 주입. 3: 강제 외부 냉각.

3번.

타이밍이 문제였다. 배출 주기를 맞춰야 한다. 증기가 뿜어지는 직전에 통과하면 배출구 주변의 급냉 공기층을 타고 지나갈 수 있다. 증기 속을 통과하면 엔진이 열충격으로 즉사한다. 시간차는 1초 미만.

[냉각 밸브 잔량: 4%. 긴급 차단 프로토콜 5초 전.]

4%.

HUD 게이지가 깊은 빨간색을 넘어 경고 깜빡임으로 전환됐다. 엔진 자동 차단 프로토콜. 5초 뒤에 레드라인이 알아서 멈춘다. 그게 살아있는 엔진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김과속은 그 5초를 쓸 생각이 없었다.

배출구까지 50미터. 벽면 파이프가 진동하며 기압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미세하게. 배출 직전의 압력 진동음. 저음역의 떨림이 헬멧 귀 보호재를 통해 두개골에 직접 전달됐다. 온도 차이가 만드는 기압 진동. 파이프 안에서 고압 증기가 출구를 밀어내기 직전의 0.3초 동안, 배출구 주변 공기가 반대로 빨려 들어가며 순간적인 냉기층이 형성된다. 그 냉기층이 창문처럼 열렸다가 닫힌다.

그 창문을 통과한다.

30미터.

파이프가 떨렸다.

20미터.

진동이 커졌다. 파이프 이음새에서 흰 수증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배출 직전의 전조 현상. 압력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10미터.

몸이 앞으로 쏠렸다. 속도가 붙으면 붙을수록 바람이 상체를 밀어낸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상체를 완전히 낮춰 탱크에 밀착했다. 헬멧 바이저가 탱크 표면 몇 센티미터 위에 걸렸다. 눈앞에 타이어와 아스팔트밖에 없었다. 배출구 파이프 진동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지금.

배출구 파이프의 격벽이 열리는 찰나. 그 틈의 공기층이 순간적으로 차가워지는 0.3초. 김과속은 레드라인을 그 정확한 지점을 향해 쐐기처럼 밀어 넣었다.

증기가 터져 나왔다. 격렬한 하얀 연기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레드라인은 그 경계 직전의 냉기층을 꿰뚫듯 통과했다. 차가운 공기가 엔진 흡기구로 빨려 들어갔다. 배기구 열기가 순간적으로 꺾였다. 열이 뺨에서 빠져나가는 감각이 헬멧 너머로도 느껴졌다. 목에 달라붙어 있던 땀이 순간 식으면서 피부가 오그라들었다. 차가웠다. 진짜로 차가웠다. 영하에 가까운 배출 전 냉기층. 레드라인의 탱크 표면에 서리가 맺혔다가 곧장 증발했다.

0.1초 뒤.

등 뒤에서 폭발하듯 증기가 터졌다. 허연 벽이 세워지는 소리. 뒤늦게 통과했으면 레드라인의 엔진은 열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멈춰 섰을 것이다. 바이크가 즉사하면 속도가 있는 상태에서 아스팔트를 구르게 된다.

아무 생각도 안 했다.

[냉각 밸브 잔량: 6%. 엔진 온도 하강 중. 차단 해제.]

6%.

2%가 회복됐다. 엔진 차단은 없다. 지금 당장은.

G-라인 진입 포인트가 100미터 앞에 보였다. 철문. 폐쇄된 지하 램프. 낡은 메가-드라이브 경고 표지판이 반쯤 녹슬어 있었다. '진입 금지 — 메가-드라이브 물류 인프라 구역.' 폐쇄 후 8년이 지난 표지판. 글자 반쯤이 산화돼 읽기도 힘들었다. 철문 아래쪽에 풀이 자라나 있었다. 이 문을 연 사람이 오랫동안 없었다는 증거였다.

김과속은 철문을 부수며 통과했다.

금속이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터널 입구를 채웠다. 경첩이 뜯기며 문짝 하나가 옆으로 날아갔다. 그 소리가 도리어 좋게 느껴졌다. 블랙-하운드가 들을 수 없는 거리다.

램프가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지하 10미터. 20미터. 30미터. 불빛이 없었다. 헤드라이트가 없었다면 0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었을 것이다. 레드라인의 헤드라이트가 터널 벽면을 훑었다. 콘크리트 면에 이끼가 피어 있었다. 습기. 낡은 하수 냄새와 기계 기름 냄새가 섞인 공기. 지하 특유의 묵직하게 내려앉는 정적. 처리장과 골목을 달릴 때 귀를 꽉 채웠던 바람 소리가 사라졌다. 터널 벽이 소리를 흡수했다. 레드라인의 엔진음만이 콘크리트에 튕겨 돌아왔다. 위층의 혼란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았다.

한때 물류 트럭들이 사용했을 넓은 2차선 도로. 이제는 쓸모를 잃고 방치된 구형 인프라. 차선 도색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천장에는 메가-드라이브의 구형 로고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황금색 날개 문양. 에어-웨이 칩에서 봤던 것과 같은 로고. 다른 각도에서 보는 같은 얼굴이었다.

도망쳐야 할 곳이 이런 곳이라는 게, 어딘가 비틀린 농담처럼 느껴졌다.

레드라인이 터널 안에서 멈췄다. 엔진이 꺼졌다. 숨을 고르듯.

고요가 내려앉았다. 진짜 고요. 블랙-하운드 드론도 없고, 장갑차 엔진음도 없고, 바이퍼의 형광 불빛도 없다. 터널 천장 어딘가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텅. 김과속은 그 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헬멧 안에서 숨을 제대로 내뱉었다. 아무도 없는 폐쇄된 지하. 한동안 이 공간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레드라인에서 내렸다. 다리가 뻣뻣했다. 긴장 상태에서 몸이 굳었던 것이다. 발을 땅에 딛는 순간 무릎이 살짝 떨렸다. 오늘 몸이 감당한 충격의 총합이 뒤늦게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착지 충격. 장갑차 측면 마찰. 폐증기 배출구 통과. 셔터 하단 스침.

청구서 목록이 길었다.

어깨 통증이 돌아왔다. 아까 장갑차 사이드 미러에 얻어맞은 왼쪽 어깨. 아드레날린이 빠지면서 뒤늦게 통증이 올라왔다. 손목 감각도 조금씩 돌아왔다. 오른 엄지 관절이 욱신거렸다. 연속 고속 주행 후에 항상 오는 과부하 반응이다. 무시해도 되는 정도. 하지만 무시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김과속은 헬멧을 벗고 코트 주머니에서 칩을 꺼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엄지손톱 크기의 검은 코어 칩. 표면의 금빛 회로가 레드라인의 잔열에 데워진 손바닥 위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에어-웨이 접속 좌표. 인증 키.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

이걸 얻기 위해 오늘 얼마나 많은 것을 소모했는지 계산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냉각 밸브 잔량. 차체 오염. 어깨 타박. 손목 과부하. 블랙-하운드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이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도움을 줬다.

그래도 칩은 손에 있다.

터널 저편으로 에어-웨이의 실루엣이 보이는 것 같았다. 보일 리 없었다. 지하 30미터 터널에서.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분명하게 그려졌다. 상공 500미터의 빛. 속도 제한 없는 하늘. 브레이크가 필요 없는 하늘길.

하층 구역의 쥐새끼가 거기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미치도록 빠를 것이다.

그 생각이 확신이 되는 데는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잘 버텼어, 레드라인."

헬멧 통신이 점멸했다. 수신 신호.

바이퍼였다.

"드론 30초 묶어줬어. 계산대로 빠져나갔지?"

"덕 봤다."

짧은 침묵.

"그 칩 좌표, 다른 데도 있어. 넌 모르는 게 있어."

김과속은 손바닥 위의 칩을 내려다봤다. 에어-웨이 접속 포인트 #07. 단 하나의 좌표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뜻이야."

대답 없었다.

터널 진입 포인트 쪽에서 스텔스 바이크의 형광 보라빛 바이저 불빛이 보였다. 바이퍼가 진입하지 않은 채로, 램프 위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전자 셔터 너머. 그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꺼지지 않았다.

그녀는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오지 않으면서 보고 있었다. 그게 의미하는 것이 한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협박인지 경고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김과속은 칩을 쥔 손을 천천히 오므렸다. 레드라인의 엔진이 다시 낮은 소리로 울리기 시작했다. 냉각 밸브 6%. G-라인 전방. 그리고 손바닥 위의 칩 안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터널이 깊었다. 어두웠다.

그래도 직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