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18장. 독사의 어금니 (毒蛇之牙)

"결국 그 괴물들의 힘을 빌려 사문(師門)을 배신했군. 운비, 네놈의 검에 더 이상 빙궁의 긍지는 남아있지 않다."

설희의 외침이 빙혼실의 차가운 벽을 타고 메아리쳤다. 그녀의 음성에는 분노만이 아니라, 한때 아끼던 제자에 대한 처절한 실망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운비는 대답 대신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을 박찼다.

콰아앙!

운비의 발이 닿은 얼음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만마단의 기운이 그의 근육을 비정상적으로 팽창시켰고, 찢어진 제자복 사이로 검붉은 혈관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었다. 벽에 걸린 빙궁의 의장검(儀仗劍)을 낚아챈 그의 손에서 검붉은 강기(罡氣)가 서렸다. 한 시진 전의 현상 장로와 같은 마기였으나, 자의로 복용한 만큼 그 농도는 한층 짙었다.

청운은 신형을 비틀어 그 파괴적인 일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의장검이 지나간 자리의 얼음 기둥이 비스듬히 잘려 나가며 무거운 굉음을 내고 바닥에 부서졌다.

"청운, 조심하세요! 저놈의 힘은 이미 상식 밖이에요!"

소설의 경고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전투에 직접 끼어들 수 없었으나, 빙혼실의 입구를 지키며 현상 장로가 유탄에 맞지 않도록 침상 앞에 방어 진(陣)을 펼치고 있었다.

운비의 연속 공격이 쏟아졌다. 만마단이 부여한 괴력은 빙궁의 정교한 검법을 야수의 폭력으로 변질시키고 있었다. 한 수 한 수가 건물을 허무는 듯한 파괴력을 품었다. 청운은 내력을 아끼기 위해 정면 승부를 피하며 낙엽검법의 정수, 풍엽수(風葉隨)를 전개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상대의 강한 기운을 타고 흘러넘기는 보법이었다. 운비의 대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청운의 신형은 칼끝에서 한 뼘 거리를 유지하며 물 흐르듯 빠져나갔다.

챙! 챙! 챙!

날카로운 마찰음이 이어졌다. 청운은 운비의 육중한 검세를 흘려내며 그의 빈틈을 노렸다. 운비의 공격은 강력했으나, 마기에 잠식된 탓에 초식(招式)의 정교함이 무너져 있었다. 빙궁의 검법이 가진 본래의 절제와 예리함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야수의 발악 뿐이었다.

설희가 측면에서 세검으로 운비의 오른쪽 옆구리를 찔렀다. 빙화침(氷花針)의 변식(變式)이었다. 그러나 만마단이 경화시킨 운비의 피부는 세검의 날을 튕겨냈다. 설희가 충격에 반보 물러나는 사이, 운비의 역습이 쏟아졌다. 대검의 등이 설희의 세검을 강타하며 그녀를 벽 쪽으로 날려 보냈다.

"하하하!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구나! 하지만 이 힘 앞에 기술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소궁주, 당신도 마찬가지요!"

운비가 다시 한 번 대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전신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오며 빙혼실의 온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얼음으로 된 벽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기가 주변의 기(氣)를 빨아들이며 스스로 팽창하고 있었다. 만마단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청운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현상 장로를 정화한 뒤 남은 내력은 육 할(六割)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힘이 아닌 정교함이 필요했다. 단 한 방, 정확한 일격.

낙엽검법(落葉劍法) — 추풍낙엽(秋風落葉)!

청운의 신형이 찰나의 순간 세 갈래로 나뉘었다. 환영(幻影)이 아니었다. 한계에 다다른 속도가 만들어낸 잔상이었다. 운비의 대검이 허공을 갈랐을 때, 세 개의 그림자 중 하나는 이미 사라졌고 나머지 둘도 연기처럼 흩어졌다. 진짜 청운은 운비의 사각, 왼쪽 아래에 있었다. 검 끝이 운비의 단전 위 기해혈(氣海穴)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끄아악!"

운비의 비명이 빙혼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청운의 검이 마기를 운용하는 핵심 혈도(穴道)를 정확히 꿰뚫었다. 마기가 역류하며 운비의 전신이 부풀어 올랐다. 혈관이 터지며 피부 곳곳에서 검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운비는 무릎을 꿇었다. 대검이 손에서 빠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말해라. 누가 너에게 그 약을 주었나. 그리고 '주군'이라 부르는 자는 누구냐?"

청운이 운비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검 끝에서 흘러나오는 정기(正氣)가 운비의 피부를 지지며 연기를 피웠다. 하지만 그 순간, 운비의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히더니 입가에서 검은 거품이 일었다. 만마단의 마지막 발작이 시작된 것이었다.

"주... 주군께서는... 이미... 너희의 머리 위에 계신다..."

말을 끝으로 운비의 몸이 마치 말라비틀어진 낙엽처럼 급격히 쭈그러들었다. 피부가 쪼그라들고 살이 빠지며, 순식간에 노인의 미라처럼 변해 갔다. 만마단의 기운을 견디지 못한 육체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설희가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한때 함께 검을 나누던 제자의 최후가 이토록 참혹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청운은 식어가는 시신을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재능도 열정도 있던 젊은 무인이었다. 그러나 만마단이 속삭인 달콤한 거짓이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머리 위에 계신다..."

청운은 운비의 마지막 말을 되뇌었다. 단순한 조롱인가, 아니면 문자 그대로의 경고인가. 첩자는 잡았으나, 그 배후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