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배신의 대가 (背信之代價)
쾅!
척혈의 붉은 강기가 청운의 검과 충돌하며 귀를 찢는 듯한 파공음을 내질렀다. 충격파가 석실 벽면의 얼음을 갈라놓았고, 천장에서 고드름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단전의 내력이 이제 삼할 오푼도 채 남지 않은 청운에게는 매 합이 벼랑 끝의 혈투였다.
"하하하! 일엽, 그 늙은이가 죽기 전에도 너 같은 쥐새끼에게 모든 것을 걸었단 말이냐? 가련하구나!"
척혈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만마단에 의해 강화된 공력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가 휘두르는 단검 '혈조(血爪)'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서늘한 냉기 대신 진득한 피비린내가 석실 안에 가득 찼다. 검에 실린 마기가 공기 중의 수분을 증발시키며 붉은 안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청운 소협! 제가 뒤를 받치겠습니다!"
설희가 빙화만천(氷花滿天)의 초식을 전개하며 척혈의 사각을 노렸다. 수십 겹의 빙화가 척혈의 등을 향해 회전하며 쇄도했다. 그러나 척혈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왼손을 뒤로 휘둘렀다. 흑적색의 파동이 빙화를 일순간에 녹여버리며 설희를 덮쳤다. 그녀는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뒤로 밀려나 벽에 등을 부딪혔다.
"소궁주, 당신의 상대는 내가 아니야. 나의 '주군'께서 곧 이 빙궁의 모든 것을 차지하실 테니, 편히 구경이나 하시지."
척혈의 시선이 다시 청운에게 고정되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이성이 소멸되고, 오직 파괴를 향한 광기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청운은 낮게 가라앉은 숨을 몰아쉬었다. 내력의 한계. 검을 쥔 손바닥은 진동으로 갈라져 피가 배어 나왔고, 양 어깨의 근육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일엽도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무릇 검이란 힘이 아닌 도(道)로 휘두르는 것이니라.'
'청산불변(靑山不變)... 만물정화(萬物淨化)...'
청운이 눈을 감았다. 남은 삼할 오푼의 내력을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쥐어짰다. 검을 세운 것이 아니라, 검을 놓아주듯 힘을 빼자 오히려 기의 흐름이 역설적으로 투명해졌다. 푸른빛이 아닌, 유리처럼 맑은 정기가 검신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장검의 떨림이 멈추고, 검 끝에 한 점의 빛이 맺혔다.
낙엽검법(落葉劍法) ― 청산일점(靑山一點).
청운의 신형이 찰나의 순간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척혈이 경악하며 혈조를 휘둘렀으나, 검은 이미 그의 붉은 강기 사이를 유령처럼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마기의 틈. 아무리 강대한 마공이라도 호흡과 호흡 사이에 반드시 존재하는, 순수하지 못한 기운이 만들어내는 한 점의 빈틈. 청산심법이 아니면 읽을 수 없는, 탁기 속의 청정이었다.
치익...
정순한 도가(道家)의 내기가 척혈의 심장 부근을 관통했다. 그것은 파괴가 아닌 정화(淨化)였다. 찔린 것은 살이 아니라 마기 그 자체였다. 척혈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검붉은 마기가 연기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내... 내 힘이!"
척혈의 몸이 쪼그라들었다. 만마단이 부여한 초인적 체격이 빠져나가며 본래의 늙은 노구가 드러났다. 그는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마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극심한 고통과, 자신이 저지른 배신의 무게만이 남았다.
"말해라. 주군이 누구냐."
청운이 척혈의 목줄기에 검을 갖다 대었다.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된 석실 바닥 위에서, 척혈의 떨리는 입술이 간신히 열렸다.
"주... 주군께서는... 이미... 빙궁의... '천기(天機)'를... 손에..."
말을 끝맺기도 전에 척혈의 눈동자가 힘없이 풀렸다. 만마단의 부작용이 마기가 정화된 육신을 견디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청운은 비틀거리며 검을 집어넣었다. 내력은 이제 이할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들은 마지막 단어는 소름 끼칠 정도로 명확했다.
'천기(天機)... 설마 천기각의 후계자인 소설이 위험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