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23장. 천기의 위기 (天機之危機)

스윽...

창호지를 뚫고 스며든 바람이 등불을 가냘프게 흔들었다. 촛농이 소리 없이 한 방울 떨어지고, 그림자가 벽 위에서 일렁였다.

천기각(天機閣)의 후계자 소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며칠째 이어진 해독 작업과 청운의 상태를 살피느라 몸과 마음이 함께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기각의 피를 물려받은 그녀의 영민한 감각은, 잠든 와중에도 방 안의 기류가 미묘하게 변했음을 포착했다.

죽음의 냄새.

피와 쇠, 그리고 만마단 특유의 비릿한 약취가 어둠 속에 묻어 스며들고 있었다.

"누구냐!"

소설이 눈을 뜨며 소매 속의 암기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응결된 그림자는 그녀의 반응보다 빨랐다. 흑색 복면 위로 번뜩이는 핏빛 안광. 만마단으로 강화된 혈영회의 정예 살수였다. 그자의 전신에서 풍기는 살기는 척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순수하고 짙었다.

"천기각의 핏줄을 끊어 우리 주군의 길을 열겠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마치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는 기계처럼, 살수의 검이 소설의 목줄기를 향해 일직선으로 쇄도했다.

소설은 무영보(無影步)를 전개해 필사적으로 신형을 날렸다. 검끝이 머리카락 한 올을 스치며 잘라냈다. 하지만 좁은 방 안에서 살수의 폭발적인 속도를 따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두 번째 검격이 쇄도할 때, 소설은 뒤로 물러날 벽마저 등에 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끝인가.'

암기를 쥔 손이 떨렸다. 천기각에서 익힌 것은 정보 수집과 해독이지, 이 괴물 같은 살수에 맞설 무공이 아니었다.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그 찰나의 시간이 기이하게 늘어졌다.

쾅!

닫혀 있던 문이 부서지며 푸른 검광이 살수의 검과 소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손... 거두는 게 좋을 거다."

청운이었다. 그는 척혈과의 혈투 직후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부서진 문틀에 기댄 그의 안색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검을 쥔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단전에는 이제 겨우 일할 오푼의 내력만이 간신히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청운 소협!"

소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안도와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다. 저 사람이 지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눈은 정확히 읽고 있었다.

"소설 낭자, 내 뒤로 물러나시오."

청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으나 그 위엄만은 여전했다. 살수는 새로 나타난 방해물의 상태를 단번에 간파한 듯, 복면 아래에서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내력이 바닥난 청성파의 파문 제자라니. 어쩌면 오늘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구나."

살수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이전보다 빠르고, 무거운 일격. 청운은 이를 악물고 검을 맞세웠다.

격! 콰득!

검과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청운의 입가에서 핏방울이 배어 나왔다. 부족한 내력을 정신력으로 메우고 있는 형국이었다. 뼈가 삐걱거리고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등 뒤로 물러서며 숨죽이고 있는 어린 소녀의 가녀린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검을 쥔 손에 다시금 힘이 들어갔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살수의 세 번째 횡베기가 청운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 도포가 찢기고 피가 배어 나왔다. 네 번째 찌르기를 간신히 흘려보냈을 때, 청운의 무릎이 꺾이듯 한쪽으로 흔들렸다. 살수의 눈이 빛났다. 마지막 일격을 위해 검에 마기를 응축하기 시작했다.

'아직... 아직은.'

청운은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걱정하며 떨고 있을 소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일엽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 귓가에 울렸다. '검이란,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니라.'

청운은 마지막 남은 내력을 단전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리며, 금기(禁忌)의 수법을 결심했다.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