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청산의 각오 (靑山之覺悟)
어둠 속에서 쏘아진 살수의 검 끝이 청운의 가슴팍을 스치며 옷자락을 찢어발겼다. 금속의 서늘한 감촉이 살갗에 닿았다. 피가 아닌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단전은 텅 비어 있었다. 꺼져가는 촛불 같은 내력으로는 다음 일격을 막을 수 없었다.
살수가 검을 다시 들어 올렸다. 칼날이 촛불을 반사하며 한 줄기 냉광을 그렸다. 살의가 서슬 퍼렇게 방 안을 눌렀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오그라들었다. 살수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미 끝났다고, 그 입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등 뒤에서 소설의 가녀린 숨소리가 들렸다. 공포에 짓눌린 짧은 떨림. 어둠 속 작은 짐승이 떠는 것 같은 소리. 흐려지는 정신을 그 소리가 붙잡았다. 희미하되 날카롭게. 소설이 죽으면 북해의 길도, 혈영회의 단서도, 스승의 원수를 쫓던 모든 여정이 끊긴다. 이곳까지 걸어온 피의 길이 무의미해진다.
'스승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제게 남기신 마지막 도(道)가 남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것이라면,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이를 악물었다. 치아 사이에서 피 맛이 났다. 청운은 단전 깊은 곳으로 손을 뻗었다. 평소라면 주화입마가 두려워 결코 건드리지 않았을 혈도. 생명의 정수(精髓)가 잠든 그곳에 의지를 밀어 넣었다. 청산심법의 비전 중 가장 치명적인 금기―연수결(燃壽訣). 남은 수명을 땔감 삼아 태워, 찰나의 폭발적인 공력을 끌어내는 비술. 스승은 생전에 이 초식만은 쓰지 말라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고.
뼈가 타올랐다. 안에서부터. 경맥마다 불꽃이 피어나듯 달아올랐고,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깨어나 줄기줄기 퍼져 나갔다. 피가 끓었다. 심장이 쪼개질 듯 두방을 울렸다. 그 열기가 정점을 찍는 순간, 불길은 한순간에 백광(白光)으로 뒤집혔다.
쿠우웅!
방 안의 공기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청운의 전신에서 평소의 은은한 푸른빛이 아닌, 눈이 찢어질 듯 투명한 백색의 기운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기물들이 기압에 짓눌려 산산조각 났다. 촛불이 꺼졌으나 방 안이 낮처럼 밝아졌다. 찬장이 갈라지고, 다기가 가루가 되었으며, 창호지가 찢겨 나가 북해의 칼바람이 밀려들었다.
"무, 무슨 미친 짓을 하는 거냐! 기어이 제 목숨을 버릴 작정이냐!"
살수가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으나 이미 늦었다. 연수결로 각성한 청운의 손에서 검은 더 이상 쇳덩어리가 아니었다. 번뜩이는 빛이었고, 휘몰아치는 바람이었으며, 거부할 수 없는 천리(天理) 그 자체였다.
낙엽검법(落葉劍法) ― 청산영겁(靑山永劫).
단 한 번의 휘두름. 고요하되 파괴적인. 살수의 마기가 빛의 궤적에 닿자 한 줌의 재로 정화되어 흩어졌다. 예리한 검은 방어조차 못 한 채 부서졌고, 방어막을 잃은 살수의 신형이 석벽을 뚫고 복도 저편으로 튕겨 나갔다. 벽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정적.
"커헉... 쿨럭!"
적을 쓰러뜨린 직후, 청운의 입에서 시커먼 독혈이 쏟아졌다. 무릎이 바닥을 쳤다. 백색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사라진 자리에, 영혼마저 부서질 듯한 고통과 한기만이 남았다. 갈비뼈 안쪽이 얼어가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박자를 잃고 불규칙하게 뛰었다. 부러진 검을 바닥에 꽂고 겨우 무너지는 몸을 지탱했으나, 양 팔이 나뭇잎처럼 떨렸다. 검을 쥔 손가락 끝이 이미 푸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수명이... 얼마나 줄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기 전에, 시야가 검게 좁혀졌다.
"청운 소협! 안 됩니다! 눈을 뜨세요!"
소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피투성이 그를 부축했다. 그녀의 손이 청운의 볼에 닿았다. 따뜻했다. 그 온기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느껴졌다―아마도 자신의 몸이 너무 차가워졌기 때문이리라. 소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청운의 이마 위에 맺혔다가, 그것마저 서리처럼 하얗게 얼었다.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설희와 빙궁 무사들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뼛속을 파고드는 연수결의 한기는, 바깥의 북해 눈보라보다 차갑고, 치명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