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25장. 천년의 맥동 (千年之脈動)

만년한청전(萬年寒淸殿)의 공기는 비장함마저 감돌고 있었다. 수백 년 세월을 견뎌온 얼음 기둥들이 열 지어 선 전각 한복판,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눕혀진 청운의 몸은 이미 시신처럼 창백했다. 연수결(燃壽訣)의 여파로 타버린 그의 경맥은 곳곳이 끊어져 있었고, 가냘픈 맥동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다.

설무극은 청운의 맥을 짚고 있는 손가락에서 미세한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빙백신공 십성의 공력으로 진맥한 결과는 참혹했다. 십이정경 중 일곱 줄기가 완전히 소실되었고, 단전 안의 내기는 촛농처럼 녹아내려 형체조차 잡히지 않았다.

'이 정도 상처를 입고도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일엽, 자네 제자는 대체 무엇으로 빚어진 놈인가.'

"궁주님, 어떻게든 이분을 살려주십시오. 저를 구하려다 이렇게 되신 분입니다!"

소설이 울먹이며 설무극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녀의 두 눈은 밤새 흘린 눈물로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고, 목소리는 쉬어 갈라져 있었다. 남궁휘 역시 침상 곁에 서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대답 없는 벗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설무극은 무거운 침묵 끝에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품 안에서 꺼내 든 것은 어제 밤 미끼로 사용했던 빙백신주(氷白神珠)였다. 주먹 크기의 구슬 안에서 찬란한 푸른 광채가 맥동하듯 명멸하고 있었다.

"빙백신주는 북해의 지맥에서 천 년에 걸쳐 영기가 응축된, 빙궁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보물이다."

설무극의 목소리가 전각 안에 낮게 울렸다. 설희가 숨을 멈추었다. 빙궁에서 나고 자란 그녀이기에, 그 말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설마 그것을 외부인에게 쓰시겠다는 겁니까? 빙궁 건립 이래 한 번도 없던 일입니다!"

"그래.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설무극이 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안에는 일평생 빙궁을 지켜온 수장의 무게와, 오래된 벗의 제자를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인간의 무게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하지만 일엽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킨 빙궁이다. 그 제자가 자신의 수명을 태워 내 딸을 구했다. 이 정도 빚이면 천 년의 보물로도 부족하지 않겠느냐."

설희의 입술이 떨렸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설무극이 신주를 청운의 가슴 위로 띄웠다. 그의 양손에서 빙백신공의 정수가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나와 신주를 감쌌다.

우우웅―!

전각 전체가 거대한 맥동과 함께 진동했다. 얼음 기둥들 사이로 푸른 광맥이 피어올랐고, 천장에서 서리가 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렸다. 신주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냉기가 실타래처럼 풀려 나가며 청운의 전신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살을 에이는 추위가 아니었다. 타버린 경맥 위로 새로운 길을 내고, 녹아내린 단전에 씨앗을 심는, 대지의 생기(生氣) 그 자체였다.

설무극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자신의 공력을 매개로 신주의 영기를 인도하는 작업은 그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미 만마심부침의 독기를 억누르고 있는 그에게 이 시술은 스스로의 수명을 깎아내는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버텨야 한다. 일엽, 나도 자네처럼 제자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바보짓을 하고 있구나.'

청운의 단전 안에서 얼어붙어 있던 청산심법의 씨앗이 신주의 기운을 머금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푸른 기운과 백색의 냉기가 뒤섞이더니 서로를 거부하지 않고 기이한 조화를 이루며 나선형으로 회전했다.

수 시진에 걸친 사투였다. 설무극의 이마에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했고, 소설은 청운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무릎이 저릿하도록 꿇어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청운의 입술에 옅은 핏기가 돌았다. 끊어졌던 경맥 위로 새로 돋아난 기의 흐름이, 느릿하게, 그러나 이전보다 훨씬 단단한 기세로 전신을 순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살았구나."

설무극이 거친 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서 빙백신주는 이미 투명한 돌조각으로 변해 힘없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천 년의 영기가 한 줌도 남김없이 청운의 몸속으로 흡수된 것이다. 설희가 달려와 아버지의 등을 부축했다.

"일엽, 자네 제자가 내 보물을 홀랑 가져가 버렸네."

설무극이 쓴웃음을 지었다. 빙궁주의 위엄 대신, 오래된 벗을 떠올리는 늙은 무인의 쓸쓸한 미소였다.

청운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몸 안에서는 천 년의 시간을 머금은 새로운 맥동이, 고요하되 거스를 수 없는 강물처럼 흐르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