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26장. 청산의 설한 (靑山之雪寒)

심연을 헤매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코끝에 쌉싸름한 침향(沈香)이 맴돌았다. 뺨을 스치는 북해의 공기. 천장의 얼음 문양이 흐릿하게 일렁이다 서서히 윤곽을 잡았다. 청운은 신음하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뼈마디가 부서진 듯 삐걱거렸으나, 단전 깊은 곳의 내기는 달랐다. 이전의 위태로운 흐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맑고, 단단하며, 묵직했다.

'이 내기... 내 것이 맞나.'

자신의 몸이 낯설었다. 호흡 한 번에 끌어올려지는 기운의 밀도가 전과 판이했다. 마치 안개 같던 내력이 한 줌의 쇠로 응축된 듯한 감각.

"청운 소협! 세상에, 드디어 정신이 드세요?"

침상 곁에 엎드려 쪽잠을 자던 소설이 화들짝 일어났다. 눈가가 발갛게 부어 있었고, 안색이 창백했다. 밤낮없이 곁을 지킨 흔적이 역력했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었고,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엉겨 붙어 있었다. 청운은 무겁게 느껴지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짐을 지웠군."

청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흘을 쓰지 않은 목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걱정을 끼쳐 미안하오.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소?"

"꼬박 사흘이에요. 숨소리조차 끊겨서... 빙궁주님이 아끼시던 빙백신주(氷白神珠)까지 써서 겨우 숨을 붙여놓으신 거예요."

소설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흘 동안 삼킨 울음이 목구멍에 걸려 있는 듯했다. 청운은 대답 대신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소설이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다시 차올랐으나 꾹 참았다. 밀린 울음을 삼키느라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청운은 더 말하지 않았다.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사과는 이미 다 한 셈이었다.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설희가 들어서더니 청운의 안색과 미세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살폈다.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녀 역시 사흘간 잠을 설친 듯 눈 밑에 그늘이 져 있었다.

"다행이군요. 맥상이 안정되었소."

청운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감고 내력을 단전으로 모았다. 기존의 푸른 청산의 기운 사이로 투명하고 날카로운 백색의 한기가 실타래처럼 촘촘히 엉켜 흘렀다. 두 줄기의 힘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나선형으로 감기며 하나의 기류를 이루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 그 기운을 모아 허공을 가볍게 튕겼다. 쨍, 하는 맑은 파열음과 함께 작은 서리꽃이 허공에 피었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결정 하나하나가 정교했다. 여섯 갈래로 뻗은 가지마다 푸른빛이 미세하게 맥동했다. 바닥에 닿은 서리꽃은 녹지 않고 한참을 유지하다가 비로소 수증기로 흩어졌다.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청산의 기운은 만물의 탁기를 씻어내고, 빙백의 한기는 어떤 마기라도 억눌러 얼린다. 전혀 다른 두 힘이 거부 없이 하나로 엮여 있었다.

"빙백신주의 영기가 청산심법과 융합되었군."

청운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중얼거렸다. 힘을 줄 때마다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냉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내력의 총량은 이전의 이할 남짓. 하지만 한 수 한 수의 무게가 다르다. 질은 오할을 넘어섰어."

설희의 눈이 커졌다.

"본궁의 핵심 제자들이 평생 뼈를 깎아 수련해야 얻는 빙백의 진기를, 이토록 빨리 자신의 무공과 하나로 받아들이다니."

감탄이 섞인 목소리였으나, 경계의 빛도 함께 스쳤다. 빙궁의 핵심 기운을 외부인이 체화했다는 사실이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청운은 그 미묘한 시선을 읽고 포권했다.

"빙궁주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진작에 시체가 되었을 목숨이오. 이 힘을 사사로이 쓸 생각은 없소. 혈영회를 무너뜨리는 데에만 쓰겠소."

설희가 잠시 청운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에서 경계가 한 겹 풀렸다.

"그 말, 믿겠습니다."

청운은 다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을 쥐자 손등의 핏줄이 희미한 백색으로 빛났다가 꺼졌다.

"하지만 놈들은 내가 쓰러진 사이 다음 수를 준비했을 것이오."

눈빛이 서릿발처럼 가라앉았다. 창밖으로 북해의 눈보라가 불고 있었다. 하얀 바람이 유리창을 때리고 지나갔다. 연수결의 후유증으로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으나, 새로 태어난 내공이 혈관 속에서 요동쳤다. 혈영회의 마기를 베어낼 순간을 기다리듯. 청운은 주먹을 쥐었다. 손안에서 서리가 맺혔다가 녹았다. 새로운 힘의 맥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