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28장. 흑빙의 비밀 (黑氷之秘密)

살수들이 쓰러진 자리에는 해동된 마기의 잔해가 검은 얼룩처럼 눈 위에 번져 있었다. 일행은 그 너머, 흑빙곡 깊숙한 곳에 교묘하게 위장된 동굴 입구를 찾아냈다. 검은 얼음으로 위장한 문을 설희가 빙기(氷氣)로 녹여내자, 안쪽에서 훈증하는 열기가 얼굴을 때렸다.

동굴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따뜻했다. 바깥의 극한과는 별개의 세계처럼, 벽면을 따라 박힌 화석(火石)들이 주황빛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코를 찌르는 역한 약초 냄새와,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진득한 피비린내가 뒤섞여 감돌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거점이 아니군."

남궁휘가 벽면에 걸린 약재 분류표를 훑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무언가를 대량으로 제조하던 공방(工房)이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규모가 드러났다. 수십 개의 대형 가마솥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가마솥마다 정체 모를 검붉은 잔류물이 바닥에 엉겨 붙어 있었다. 유리병에 담긴 미완성 약액들이 선반 위에 즐비했다. 설희가 벽면에 걸린 실험 기록부를 한 장씩 넘기다가, 어느 대목에서 손이 멈추었다.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아니, 이럴 수가..."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기록부를 쥔 손가락 끝이 백지처럼 하얘져 있었다.

"이건 인간의 몸을 매개로 만마단의 마기를 배양하는 실험 기록이에요. 지난 삼 년간 북해에서 실종되었던 주민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실험체로 쓰인 거였습니다."

청운이 기록부를 받아 들었다. 정갈한 필체로 적힌 실험 일지에는 인체에 만마단의 원료를 주입하고 그 변화를 관찰한 냉혹한 기록이 빼곡했다. '제칠호 실험체 ― 주입 삼일차, 경맥 변이 시작. 오일차, 정신 소실. 칠일차, 마핵(魔核) 생성 확인. 적출 후 폐기.'

설희가 더 이상 읽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남궁휘의 검자루를 쥔 손에 핏줄이 불끈 솟았다.

동굴은 더 깊었다. 가장 안쪽에 도달하자, 거대한 원형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만마혈지(萬魔血池)'라 새겨진 석비 옆으로, 검붉은 액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청운이 지금까지 겪어본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고 사악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혈도가 요동치고 머리가 띵해질 정도였다.

"조심하시오. 이 마기는 단순한 살기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력을 흡수해 스스로 성장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소."

청운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빙백신주의 영기가 그의 체내에서 자동으로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오래 머무는 것 자체가 독이었다.

혈지 옆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서 청운은 정갈하게 봉인된 서찰 하나를 발견했다. 서찰의 겉면에는 붉은 밀랍으로 찍힌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문파의 인장도 아닌, 처음 보는 형태였다.

"이 문양은... 중원의 천기각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에요."

뒤따라온 소설이 서찰을 유심히 살폈다. 천기각의 방대한 정보망에도 기록되지 않은 존재라는 뜻이었다. 청운이 봉인을 뜯고 서찰을 펼치자, 그 안에는 먹으로 적힌 단 세 줄의 문장이 있었다.

'북해의 정수를 흡수한 자를 생포하라. 그가 지닌 기운이야말로 우리 주군께서 완성하실 천마신단(天魔神丹)의 마지막 조각이다.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청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찰이 구겨질 정도로. 척혈이 죽기 직전 언급했던 '주군'의 궁극적 목표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적들은 이미 청운이 빙백신주의 영기를 흡수할 것까지 예견하고, 이 거점을 미끼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냥꾼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함정으로 걸어 들어온 꼴이군."

청운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때, 동굴 입구 쪽에서 귀를 찢는 폭음이 연이어 울렸다. 뒤이어 빙궁 무사들의 비명이 메아리처럼 통로를 타고 밀려왔다. 누군가가 후방을 급습한 것이다.

비로소 '사냥'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