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29장. 잔혹한 대가 (殘酷之代價)

쿠구구궁!

동굴 천장이 갈라지며 수십 근은 넘어 보이는 얼음 파편들이 빗발쳤다. 자욱한 백색 먼지 너머로 칠흑 같은 망토를 두른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발이 닿는 바닥마다 서리가 붉게 물들었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암적색 강기가 주변의 냉기를 삼키며 역한 피 냄새를 흩뿌렸다.

"나는 혈영회의 대호법, 적마(赤魔). 주군께서 점지하신 '재료'를 수거하러 왔다."

입을 열 때마다 사내의 입에서 희뿌연 혈기가 피어올랐다. 청운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척혈과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라고. 이할도 남지 않은 내력으로는 발악조차 허용되지 않을 상대라고.

"모두... 도망쳐!"

청운이 검을 뽑으려는 순간, 적마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눈동자가 따라가기도 전에 거대한 혈도(血刀)가 이미 청운의 심장을 향해 파고들고 있었다.

"안 돼!"

남궁휘가 청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남궁세가의 정수, 제왕검형 최후의 초식. 지금 쓸 수 있는 내력을 남김없이 쥐어짠 필사의 방어였다.

적마의 강기가 검신을 감아 올랐다. 쇠가 찢어지는 비명 같은 금속음이 동굴 벽을 때렸다. 남궁휘의 검이 두 동강 났고, 혈도는 멈추지 않았다. 붉은 빛이 그의 오른쪽 어깨를 스쳤다―아니, 관통했다.

서걱-!

남궁휘의 오른팔이 허공에 호를 그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잘린 단면에서 피가 아직 뿜어지지도 않았다. 적마의 강기가 너무 뜨거워 상처가 순간적으로 지져졌기 때문이다. 비명도 없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남궁휘가 무릎을 꿇으며 잘린 어깨를 부여잡았다. 검수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검을 쥐던 팔이었다.

"남궁 형!"

청운의 시야가 붉게 번졌다.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렸다. 연수결처럼 수명을 태워 내력을 끌어올릴 여유조차 없었다. 남은 것은 더 원초적이고, 더 잔혹한 방법뿐이었다. 청산역행(靑山逆行)―빙백신주가 새로 심어놓은 경맥을 강제로 역류시켜, 안에 흐르는 냉기와 주변의 마기를 한꺼번에 충돌시키는 자멸의 수법. 수명이 아니라 경맥과 근맥 그 자체를 터뜨리는, 육신을 영구히 훼손하는 금기였다.

치이익!

청운의 왼손에서 압축된 내기가 터져 나왔다. 동굴 안의 마기와 충돌하는 순간 백색과 적색의 광폭이 사방을 집어삼켰다. 벽이 갈라지고 천장이 내려앉았다. 적마조차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반 보 뒤로 물러섰다.

"크윽, 미친놈! 스스로 목숨을 내던질 셈이냐!"

적마가 떨어지는 얼음덩어리를 혈도로 쳐내는 그 찰나. 청운은 검게 타들어가는 왼손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삼키며 남궁휘의 허리를 낚아챘다. 설희가 미리 뚫어놓은 비상 통로가 눈앞에 보였다. 두 사람의 몸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만마단의 독기와 비술의 반동이 겹치며, 청운의 왼팔은 살갗부터 안쪽으로 괴사하기 시작했다. 근맥이 끊어지고 살이 검은 숯덩이로 변해갔다. 손가락이 더 이상 꺾이지 않았다.

무너지는 동굴의 굉음과 적마의 분노에 찬 고함이 등 뒤를 쫓았다. 눈보라 속 설원으로 기어 나온 일행 앞에는 핏빛으로 물든 백색의 지옥만이 펼쳐져 있었다. 남궁휘는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청운의 왼손에서는 더 이상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