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장. 한옥의 세례 (寒玉之洗禮)
빙궁 북쪽, 만년설이 켜켜이 쌓인 절벽 아래. 바위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물이라 부르기엔 너무 투명했다. 수면 위로 서린 냉기가 눈처럼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한옥천(寒玉泉). 태고의 한기가 액화(液化)되어 흐르는 이곳은 빙궁 제자들이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 마지막으로 찾는 성소였다.
"이곳의 물은 극독(極毒)이자 극약(極藥)이오."
설희의 목소리가 차분했으나, 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왼손에 뿌리박힌 마기를 씻어내려면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야 하오. 중도에 멈추면 오히려 한기가 역류하여 심장을 덮칠 것이니,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청운은 대답 대신 왼손의 붕대를 풀었다. 겹겹이 감긴 천이 벗겨질 때마다 검게 괴사한 살갗이 드러났고, 틈새에서 탁한 검은 연기가 실처럼 피어올랐다. 썩은 고기와 쇳가루가 뒤섞인 냄새. 설희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청운은 주저 없이 왼손을 샘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치이이익!
물이 끓었다. 아니, 끓는 것처럼 보였다. 마기와 정순한 한기가 청운의 근맥 안에서 격돌하며 수면 위로 검붉은 거품을 밀어 올렸다.
"아―!"
이를 악물었으나 비명이 새어 나왔다. 뼈 위를 유리 파편으로 긁어내는 듯한 극통. 손가락 하나하나가 따로 찢어지는 감각이 밀려왔다. 청운은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붙잡아 물속에서 빠지지 않도록 눌렀다. 이마 위로 굵은 땀이 흘렀고, 그 땀방울마저 턱에 닿기 전에 얼어 떨어졌다.
그 시각, 빙궁 연무장.
남궁휘는 왼손에 검을 쥐고 서 있었다.
한 걸음 내딛고, 베었다. 검 끝이 흔들리며 허공을 찢었으나 그 궤적은 일직선이 아니었다.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렸고 발이 엉켰다. 검신이 맥없이 눈바닥에 떨어졌다.
툭.
지켜보던 빙궁 무사 하나가 안쓰러운 듯 입을 열려다가, 남궁휘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형형한 눈. 흑빙곡 바닥에서 잘린 팔을 내려다보던 그 순간보다 오히려 더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남궁휘는 검을 주워 들었다.
열 번 휘두르면 아홉 번 떨어졌다. 잘린 오른쪽 어깨에서 환상통(幻想痛)이 쇄도할 때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고, 균형을 되찾기 위해 발을 딛는 방식부터 새로 익혀야 했다. 제왕검형 삼십육 초식은 양팔을 전제로 설계된 검술이다. 한쪽 팔이 사라진 지금, 그것은 쓸 수 없는 가문의 유산이 되어버렸다.
"남궁세가의 검은 죽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검을 줍고, 다시 베고, 또 떨어뜨렸다.
"이제부터는 오직 나만의 검을 쓸 것이다."
서른두 번째로 검을 주웠을 때, 왼손의 궤적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대칭을 포기하자 오히려 보이는 것이 있었다. 불균형한 몸에서만 나올 수 있는, 예측 불허의 각도. 남궁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옥천.
세 번째 파도 같은 극통이 밀려왔을 때, 청운은 의식이 끊어질 뻔했다. 설희가 등 뒤에서 양 손바닥을 대고 빙궁의 내력을 밀어 넣어 겨우 맥이 이어졌다. 그녀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으나 손을 떼지 않았다.
고통이 가라앉은 뒤, 청운이 천천히 왼손을 물에서 건져 올렸다.
검은 죽은 살점이 물에 씻겨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투명할 정도로 맑은 새 피부가 돋아나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새끼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굽혀졌다. 내력은 여전히 일할 오푼에 불과했으나, 죽어 있던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설희가 등 뒤에서 손을 거두려다 멈추었다. 자신의 내력을 끊었는데도 청운의 경맥에서 한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주입한 것이 남아있는 게 아니었다. 안쪽에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한 박자 뒤, 그녀는 손을 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운은 그 손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연무장에서 들려오는 검이 허공을 가르는 서투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떨어지고, 줍고, 다시 휘두르는 소리. 꺾인 자들만이 낼 수 있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