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32장. 빙각의 흉터 (氷刻之胸痕)

한옥천의 세례가 끝났다. 영천(靈泉)의 수면이 잔잔해지며 마지막 기포가 꺼졌다. 동굴 안에 고여 있던 냉기가 한 겹 엷어졌다.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수면에 닿으며 맑은 파문을 남겼다. 청운은 수면 위로 상체를 일으키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한옥천의 물은 체온보다 낮았으나, 몸속을 관통하고 간 극음의 기운에 비하면 미지근한 편이었다.

청운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괴사했던 살갗은 사라지고 백옥보다 창백한 새 피부가 돋아 있었다. 그러나 피부 아래로 푸른빛 도는 혈관이 실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사람의 핏줄이 아니었다. 얼음 속에 갇힌 물줄기 같은, 차갑고 이질적인 빛.

청운의 표정이 굳었다.

손가락을 쥐어 보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힘을 주자 근육이 아닌 얼음이 갈라지는 듯한 파열음이 손안에서 울렸다. 통증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아프지 않다는 것은 살아 있는 부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것이... 회복이란 말이오?"

곁에서 지켜보던 설무극 궁주가 다가와 청운의 손목을 잡았다. 맥을 짚는 손끝이 멈칫했다. 노인의 깊은 주름 사이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손가락을 뒤집어 손바닥을 펼쳤다. 손금 위로 서리가 미세하게 맺혀 있었다. 체온이 아닌 냉기가 흐르는 증거.

"만마단의 마기는 씻어냈다. 허나 그 빈자리를 한옥천의 극음(極陰) 한기가 메워버렸어."

설무극의 엄지가 청운의 손목 안쪽을 눌렀다. 맥이 뛰는 자리에서 보통은 따뜻한 피의 흐름이 느껴져야 했다. 대신 차가운 진동만이 손끝에 전해졌다. 물 위에 얇은 얼음이 지는 것처럼, 눌린 자리 주위로 하얀 서리가 번졌다.

설무극이 청운의 손을 내려놓았다. 탁, 손이 무릎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단단했다. 살이 아니라 나무토막이 떨어지는 소리에 가까웠다.

"네 왼손의 근맥은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다."

목소리를 한 단 낮추었다.

"얼음으로 빚어진 손. 빙각(氷刻)이라 부를 수밖에 없겠구나. 생명력 대신 냉기가 흐르고 있어." 노인이 잠시 청운의 손을 들여다보다 나지막이 덧붙였다. "한옥천에서 이 정도로 냉기가 정착한 자는 처음 보는구나.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 있었던 자들도 있었는데."

청운이 단전에서 내력을 끌어올려 왼손으로 보냈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굳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그 순간―고드름이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한기가 역류했다. 혈관이란 혈관이 얼어붙었다. 숨이 멎었다.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스치기에 충분한 한순간이었다. 시야가 하얗게 번쩍였다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바닥에 손을 짚으며 겨우 의식을 붙잡았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 한옥천의 물과 섞였다.

청운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명심해라."

설무극이 청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노인의 눈빛에 연민과 경고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이 손으로 무공을 펼칠 때마다 한기가 심장을 파고든다. 내력은 삼할 남짓 돌아왔으나, 전투에 쓰는 순간 수명은 잔불처럼 스러진다. 검을 쥐는 것은 고사하고, 숨 쉬는 것부터가 고통이 될 게야."

노인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영천의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가 한층 낮아져 있었다.

"만마단의 잔재는 심장 근처에도 남아 있다. 극양(極陽)의 영약을 구해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한기가 깊이 번져 결국 전신이 얼어붙을 게야."

청운은 투명한 손등 아래 서늘하게 흐르는 푸른 핏줄을 내려다보았다. 치유가 아니었다. 만마단이 남긴 또 다른 형태의 저주. 한옥천은 독을 씻어냈으나, 그 대가로 손 자체를 가져간 것이었다.

'스승님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상관없소."

한 박자도 망설이지 않았다. 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북해의 눈보라보다 무감각한 어조.

"적마의 목을 벨 수만 있다면, 이 손이 얼음덩이가 되어 부서진대도 좋소."

소설이 떨리는 손으로 청운의 왼손을 감싸 쥐었다. 온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그녀의 손바닥에 닿는 것은 살갗이 아니라 얼음이었다. 차가움에 움찔했으나, 놓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으로 더 단단히 감쌌다. 눈물 한 방울이 손등 위로 떨어졌다. 방울은 닿는 순간 작은 꽃 모양으로 얼어붙었다.

청운은 그 얼음꽃을 보지 않았다. 시선은 벽에 세워 둔 부러진 검을 향해 있었다. 검 위에도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주인의 왼손에 맞추어 함께 얼어가는 듯.

바깥에서 북해의 바람이 울었다. 의무실의 얼음 창에 눈이 부딪혀 사각거렸다. 그 소리 속에서 청운은 왼손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움직일 때마다 손안에서 서리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아프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