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33장. 빙혈의 추적 (氷血之追跡)

새벽녘이었다. 빙궁의 회랑에 옅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얼음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여명이 푸르스름한 빛줄기를 만들었다. 어디선가 새의 울음 같은 바람 소리가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청운이 짐을 챙기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떠나려는 것이오?"

남궁휘였다.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져 있었다. 잘려 나간 오른팔 자리에 핏빛 붕대가 감겨 있었다. 왼손이 검자루를 부서질 듯 움켜쥐고 있었다. 무너진 균형, 한쪽으로 쏠린 무게. 그런데도 눈빛만은 북해의 칼바람보다 날카로웠다.

"동료들을 도륙한 놈들을 살려둔 채 등을 돌리겠다는 말이오?"

청운은 붕대 감은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빙각수. 혈관을 타고 심장까지 기어오르는 한기가,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안쪽을 긁었다.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누우면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수명이 줄어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손끝에서 희미한 냉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오."

목소리를 낮추었다. 입김이 하얗게 피었다.

"적마가 천년한빙동을 점령했소. 빙궁의 성지에 응축된 만년의 영기를 빨아들여 천마신단을 완성하려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소. 놈이 신단을 완성하면 북해만이 아니라 중원까지 손 쓸 수 없게 된다."

남궁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 이를 악물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곳이 놈의 무덤이 될 수 있단 뜻이군."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말은 필요 없었다. 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휘가 왼손으로 검을 돌려 어깨에 걸쳤다. 어색한 동작이었으나 눈빛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일행은 설령관의 안전한 길을 등졌다. 적마의 마기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북쪽 절벽을 향해 걸었다. 바람의 방향이 달라지자 공기에 섞인 냄새도 변했다. 눈과 얼음의 깨끗한 냄새 대신, 쇠와 부패가 뒤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다.

눈보라가 매서웠다. 바람이 살갗을 벗기려는 듯 파고들었다. 설희가 앞장서서 길을 냈다. 빙궁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 이 정도 눈보라는 익숙한 것이었으나, 입술이 꽉 다물려 있었다. 마기에 오염된 바람이 폐를 찌르기 때문이었다.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쇠 맛이 올라왔다. 바위에 돋은 얼음이 칼날처럼 솟아 있어 한 걸음마다 장갑이 찢어졌다. 남궁휘가 발을 헛디뎠다. 한쪽 팔이 없으니 균형을 잡기 어려웠다. 청운이 아무 말 없이 팔을 내밀었고, 남궁휘는 역시 아무 말 없이 그 팔을 잡았다. 잠깐, 그리고 곧바로 놓았다. 그 짧은 교환 속에 긴 대화가 있었다.

절벽 끝에 다다르자 저 아래 거대한 동굴 입구가 드러났다.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암적색 빛이 맥박처럼 명멸했다. 적마의 마기가 빙궁 고유의 냉기를 잠식하며 대기를 비틀고 있었다. 공기 자체가 끈적해져 피부에 달라붙었다. 동굴 주변의 얼음이 붉은 핏줄 모양으로 갈라져 있었다. 마치 대지 자체가 감염된 듯한 광경. 쓰러진 짐승들이 동굴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미라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피 한 방울 남지 않은 껍데기. 큰 곰 한 마리가 입을 벌린 채 굳어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 포효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설희의 주먹이 떨렸다. 이 짐승들도 북해가 기른 생명이었다.

"소설 낭자."

청운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에서 대기하시오. 신호가 떨어지면 빙궁 주력을 부르시오."

소설이 입술을 깨물었다. 또 자신만 뒤에 남겨지는 것이 견디기 어려운 듯했다. 하지만 전장에 비무인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설희 낭자와 남궁 형, 셋이서 먼저 들어가겠소."

"청운 소협." 설희가 청운의 붕대 감긴 왼손을 보며 말했다. "그 손으로 전투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무리하면 심장이 멈출 수도 있습니다."

청운은 대답 대신 허리춤의 부러진 검을 뽑았다. 빙각의 왼손이 금속 검신에 닿는 순간, 가늘고 서늘한 공명음이 울렸다. 주위를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멈추었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허공에서 얼어붙어, 수정처럼 떠 있었다. 정지한 세계. 그 한가운데 청운이 서 있었다. 얼어붙은 눈송이들이 검 주위를 감싸며 천천히 회전했다. 무언의 위압.

"이 손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놈의 심장에 이 한기를 박아넣겠소."

정지해 있던 눈송이들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희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남궁휘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가증스럽게도... 아름답군."

떨어지는 눈을 보는 것인지, 청운의 각오를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세 사람이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암적색 빛이 발밑에서 올라와 얼굴을 물들였다. 핏빛 북해에서의 마지막 결전이, 무거운 발걸음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