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장. 얼어붙은 분노 (凍結之憤怒)
천년한빙동 깊숙한 곳. 냉기와 피 냄새가 뒤섞여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얼었다. 발밑의 얼음이 심장 박동처럼 붉게 명멸했다. 만년한빙 벽면에 핏줄 같은 균열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적마의 마기가 이 신성한 공간을 얼마나 오래 더럽혀 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벽에서 스며 나오는 마기의 냄새는 썩은 피와 탄 쇠를 섞어놓은 것 같았다.
거대한 얼음 제단 위에 적마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주위로 수십 구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빙궁 무사들이었다. 영기를 빨려 미라처럼 쪼그라든 몸뚱이는, 사람이었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한 구의 손이 동굴 입구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망치려 했던 것이리라. 도망치지 못한 것이리라.
"기어이 죽음을 재촉하러 왔구나."
적마가 눈을 떴다. 그것만으로 제단 주변의 얼음 기둥들이 쩍쩍 갈라졌다. 살기가 무게를 지닌 것처럼 어깨를 눌렀다. 호흡이 짧아졌다. 무릎이 저절로 꺾이려 했다. 설희조차 반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일엽의 제자와 남궁의 떨거지여."
적마의 입에서 혈기 섞인 입김이 피어올랐다. 제단 위의 시체들이 그 기운에 반응하여 미세하게 떨렸다. 죽어서도 마기에 묶여 있는 것이었다.
청운은 왼손의 한기를 억누르며 검을 뽑았다. 검병을 쥔 손가락 사이로 서리가 번졌다.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손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분노였다. 바닥에 널린 빙궁 무사들의 참상이 눈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름을 가진 무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동료이고,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것이다.
"네놈의 광기는 여기서 끝이다."
파앗!
남궁휘가 먼저 뛰어들었다. 왼손에 든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적마의 옆구리를 팠다. 거칠었다. 남궁세가 제왕검형(帝王劍型)의 우아함은 간데없고, 맹수가 이빨을 세우듯 날것 그대로의 일격이었다. 왼손에 검을 쥔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팔꿈치가 열리고, 손목이 꺾이는 각도가 불안정했다. 그럼에도 팔을 잃은 분노가 검에 실려 공기를 갈랐다.
챙!
적마의 혈도가 가볍게 쳐올려졌다. 손목도 대지 않았다. 칼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만으로 남궁휘의 검을 튕겨냈다. 남궁휘가 바닥을 굴렀다. 어깨가 얼음 바닥에 부딪혔다. 이가 맞물렸다. 미완성 검술로는 뚫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적마의 시선이 찰나 흔들렸다. 남궁휘의 검에서 느껴진 것은 실력이 아니라 살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검. 적마가 그것에 반응한 것이었다. 미미한 반응이었으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설희가 적마의 측면에서 빙궁의 장법을 내질렀다. 서리를 머금은 장풍이 마기의 흐름을 한 순간 끊었다. 적마의 주의가 양쪽으로 분산되었다.
청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생명력을 담보로 빙각수의 봉인을 풀었다. 왼손 전체가 백색으로 물들었다. 손가락 관절마다 서리꽃이 터졌다.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대가가 시작된 것이었다.
빙각수(氷刻手) ― 빙결참(氷結斬)!
왼손에서 투명한 검기가 터져 나왔다. 뼈가 비명을 질렀다. 아니, 뼈는 이미 얼음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것은 심장이었다. 검기가 적마의 얼굴을 스쳤다. 적마가 고개를 돌렸으나 반 박자 늦었다. 한기가 스친 왼뺨에 검은 서리가 맺히고, 살갗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크윽... 미천한 것들이!"
적마의 혈도에서 암적색 파동이 폭발했다. 충격파가 동굴을 휩쓸었다. 청운의 몸이 벽에 부딪혔다. 등뼈가 꺾이는 줄 알았다. 입안에 피가 고였다. 반대편에서 남궁휘도 벽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얼음 파편이 사방에 날카롭게 박혔다.
청운은 시커먼 피를 뱉고 일어섰다. 심장 위의 서리가 한 겹 더 두꺼워진 것이 느껴졌다. 왼손의 감각이 팔꿈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빙각이 번지고 있었다. 시야 가장자리가 붉게 번졌다. 설희는 벽에 기댄 채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남궁휘도 떨리는 다리를 세우며 검을 고쳐 쥐었다. 왼손이 피로 미끄러웠으나 검을 놓지 않았다.
"남궁 형. 버틸 수 있겠소?"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놈의 발을 묶겠소."
남궁휘가 피를 뱉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대가 파고들 한 번의 틈은 만들어 줄 수 있소."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 합을 맞추었다. 팔을 잃은 검수와 목숨을 깎는 손을 가진 검객. 완전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불완전한 둘이 합쳐지면, 적마의 방어에도 틈은 생긴다.
바닥의 피가 얼어 거울이 되었다. 그 위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는 성한 곳 하나 없이 부서져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들이 일어섰다. 꺾인 자들의 반격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