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40장. 화룡의 거처 (火龍之居)

이튿날 밤부터 걸었다. 그 다음 날도 걸었다. 산길은 험했고 청운의 몸은 시각을 다투었다.

숭산의 골짜기에 접어들었을 때 청운이 쓰러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다. 걸음을 옮기던 발이 멈추더니 무릎이 먼저 꺾이고, 옆으로 고꾸라졌다. 남궁휘가 잡으려 했으나 한 박자 늦었다. 낙엽 위로 쓰러진 청운의 몸에서 한기가 폭사하듯 쏟아져 나왔다. 주위 삼 장 안의 풀이 순식간에 하얗게 얼어붙었고, 남궁휘의 옷깃에도 서리가 내렸다.

"청운!"

소설이 달려왔으나 한기의 벽에 부딪혀 다가서지 못했다. 한겨울 삭풍보다 매서운 냉기였다. 청운의 입술이 검푸르다 못해 자줏빛으로 물들었고, 눈이 반쯤 감긴 채 동공이 초점을 잃었다.

남궁휘가 이를 악물고 한기의 벽을 뚫었다. 왼손에 자양진기를 응집시켜 청운의 등에 장심을 대자 한기가 격렬히 저항했다. 뼈마디가 얼어붙는 듯한 통증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번졌다. 이마의 땀이 흘러내리기도 전에 얼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일각(一刻)이 지나서야 한기의 폭주가 가까스로 가라앉았다. 남궁휘가 손을 거두었을 때, 그의 왼손은 손가락 끝까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내력의 태반을 쏟아부은 것이다.

"더는 억누를 수 없소." 남궁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음번에는 내 내력으로도 모자라오."

소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골짜기의 양쪽 절벽이 하늘을 가릴 듯 솟아 있고, 그 사이로 가느다란 개울이 흘렀다. 이끼 낀 바위 틈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다. 지열이 아니었다. 양기를 끌어모은 흔적이었다.

"이 근처예요." 소설이 개울을 따라 걸었다. 백여 보를 오르자 절벽 중턱에 동굴 하나가 보였다. 입구에 덩굴이 드리워져 있으나 그 사이로 붉은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왔다. 동굴 앞 바위에는 오래전 누군가 새긴 듯한 '절속(絶俗)'이라는 두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남궁휘가 청운을 업고 올라왔다. 소설이 동굴 앞에서 공손히 읍하며 입을 열었다.

"화룡진인 어른, 위급한 환자가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대답이 없었다. 바람 소리만이 절벽을 훑고 지나갔다.

"진인께서 안 계신 건 아닐 테지." 남궁휘가 낮게 말했다. 굴 안에서 미세한 호흡의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사람이 있다.

한참 뒤, 굴 안쪽에서 낮고 건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돌아가라. 늙은이는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소설이 입술을 깨물었다. 남궁휘는 청운을 조심스레 내려놓은 뒤 동굴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외팔의 몸으로 두 손을 모을 수 없었기에 왼손을 땅에 짚고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한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을 세 차례 반복했다. 이마가 바위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골짜기에 울렸다. 세 번째 예를 마칠 즈음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남궁휘의 목소리에는 청하는 자의 간절함이, 그러나 무인의 기개가 함께 서려 있었다.

굴 안의 기운이 미세하게 흔들렸으나 답은 없었다. 소설이 한 걸음 나섰다. 품에서 작은 금속 패를 꺼내 두 손으로 높이 들어 올렸다. 반 뼘 남짓한 은빛 패에는 천기각(天機閣)의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진인께서는 삼십 년 전 천기각에 빚을 지신 적이 있으시지요."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동굴 안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들어와라."

동굴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벽면의 틈새에서 붉은빛을 띤 광석이 은은히 빛나고, 석상 위에서 약초 달이는 냄새가 그윽했다. 화룡진인은 백발이 허리까지 내려온 노인이었다. 마른 체구였으나 눈빛만은 타오르는 듯한 정기가 서려 있었다.

진인이 청운의 손목을 잡았다. 순간 눈이 가늘어졌다.

"이것은 단순한 빙한지독이 아니다."

손가락이 맥을 따라 옮겨갔다. 촌구맥에서 척맥까지, 다시 인영맥을 짚었다. 진인의 표정이 점점 무거워졌다.

진인이 손을 거두며 탄식했다. "빙각의 뿌리가 경맥 깊숙이 내려앉아 심맥을 잠식하고 있구나. 단순히 외부 한기가 들어온 것이 아니야 — 한옥천에서 받아들인 한기가 유난히 깊이 정착한 탓인지, 처음 침습의 강도가 너무 극심했던 탓인지. 어느 쪽이든 이 뿌리가 문제야."

"치료할 수 있습니까?" 소설이 다급히 물었다.

진인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적화삼양단(赤火三陽丹)이라는 것이 있다. 극양의 영약이지. 이것으로 빙각의 뿌리를 녹이면 한기도 함께 풀린다."

"그 단약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단을 짓는 것은 늙은이가 할 수 있으나," 진인이 동굴 깊숙한 곳을 가리켰다. "주재료인 천년화수목(千年火髓木)의 수액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곳에 없다."

남궁휘와 소설의 눈이 마주쳤다. 또 하나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인은 양기를 담은 금침으로 청운의 한기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금침이 혈도에 꽂힐 때마다 청운의 창백한 얼굴에 희미하게나마 핏기가 돌았다.

"열흘이다." 진인이 침을 놓으며 말했다. "늙은이의 침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열흘. 그 안에 화수목의 수액을 구하지 못하면 이 아이는 죽는다."

동굴 밖으로 바람이 울었다. 숭산의 봉우리들이 석양빛에 물들어 붉게 타올랐다. 마치 화룡이 잠든 등허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