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42장. 동관(潼關)의 흑영 (黑影)

동관(潼關)은 예로부터 관중(關中)으로 통하는 목줄이었다. 험준한 산세와 누런 황하(黃河)가 맞물려 천혜의 요새를 이루는 곳.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동관의 뒷골목은, 거친 협객과 음습한 왈패들의 숨결로 가득했다.

바람이 차가웠다. 음산한 기운을 머금은 삭풍이 부서진 토담 사이를 훑고 지나가며 귀곡성(鬼哭聲)을 냈다. 숭산(嵩山) 화룡동(火龍洞)을 떠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을 달린 지 이틀째. 남궁휘(南宮煇)는 낡은 객잔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낡은 삿갓을 깊게 눌러쓴 그의 오른손은 탁자 위에 놓인 검 자루를 떠나지 않았다. 상실한 왼팔의 빈 소매가 스산한 밤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그의 내력(內力)은 채 반의반도 차지 않은 상태였다. 북해(北海)에서 입은 내상과 이마의 상처는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삿갓 아래 번뜩이는 안광만큼은 벼려낸 검신(劍身)처럼 형형했다.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 그것은 외팔이 검객으로 다시 태어난 자의 독기(毒氣)였다.

"늦는군."

남궁휘가 낮게 중얼거렸다. 탁자 위에 놓인 식은 차(茶)에서 희미한 김이 피어올랐다. 소설(小雪)이 천기각(天機閣)의 점조직과 접선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지 벌써 반 시진(半 時辰)이 지나고 있었다. 이곳 동관에서, 천년화수목(千年花樹木)이 숨겨져 있다는 태백봉 심곡(深谷)으로 향하는 은밀한 경로를 알아내야만 했다.

끼익.

객잔의 낡은 문이 열리며 찬 바람이 훅 밀려들었다. 잿빛 장옷을 뒤집어쓴 소설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했다. 숨소리가 거칠었고, 장옷 자락 끝에는 옅은 진흙이 묻어 있었다.

"찾았소?"

남궁휘의 물음에 소설이 주변을 기민하게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소설이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천기각의 정보망이 이미 노출되었어요. 접선책의 눈빛이 흔들렸고, 무언가 쫓기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동관 전체에 이미 우리를 노리는 그물이 쳐져 있을지도 몰라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객잔 안의 공기가 끈적하게 가라앉았다. 구석에서 술을 들이켜던 장한 서너 명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호두도(虎頭刀)가 들려 있었다. 문밖에서도 묵직한 발소리가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살기(殺氣)가 사방에서 조여들었다.

"눈치가 빠른 계집이로군."

장한 중 한 명이 이죽거리며 다가왔다. 그의 목덜미에는 혈영회의 하급 살수임을 증명하는 붉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무림맹에서 내린 수배령을 쫓아 여기까지 추적해 온 사냥개들이었다.

"무림맹에서 수배한 잔당들이 제 발로 무덤을 찾아올 줄이야. 그 빈 소매를 보아하니, 네놈이 바로 남궁세가에서 쫓겨난 외팔이 공자인가 보군."

살수의 조롱에도 남궁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잃어버린 왼팔 탓에 몸의 중심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과거라면 숨 쉬듯 자연스러웠을 기수식(起手式)이, 지금은 의식적으로 하체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아야만 가능했다.

'왼쪽의 사각(死角). 그리고 텅 빈 단전.'

남궁휘는 자신의 상태를 냉정하게 직시했다. 열흘이라는 시한. 청운의 심장을 갉아먹고 있는 빙각의 한기를 억누르기 위해 남은 시간은 이제 여드레뿐이었다. 여기서 살수 떨거지들에게 지체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스릉!

섬뜩한 쇳소리와 함께 남궁휘의 검이 칼집을 빠져나왔다. 창천(蒼天)을 가르던 남궁세가 제왕검형(帝王劍形)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그의 검은 오직 생존과 살상을 위해 벼려진 처절한 궤적을 띠고 있었다.

"죽여라! 수급(首級)을 바치면 맹(盟)에서 후한 상이 내릴 것이다!"

살수들이 일제히 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좌우에서 짓쳐 들어오는 시퍼런 칼바람에 남궁휘의 몸이 유연하게 꺾였다. 비록 왼팔이 없어 균형이 위태로웠으나, 그는 오히려 그 불안정한 무게중심을 이용했다. 몸이 크게 기우는 반동을 검 끝에 실어, 벼락같은 속도로 찔러 들어갔다.

서걱!

선두에 선 살수의 목통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남궁휘의 검은 다음 목표를 향해 뱀처럼 기괴하게 꺾여 들어갔다.

"크윽!" "이놈, 외팔이 주제에!"

살수들의 당황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남궁휘의 검술은 예전의 정대한 무공이 아니었다. 한 팔을 잃은 절망 속에서, 짐승처럼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깎아낸 무형(無形)의 살검(殺劍)이었다. 내력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동선은 짧았고, 모든 초식은 적의 숨통을 끊는 치명타만을 노렸다.

챙! 채쟁!

금속음이 객잔 안을 어지럽게 울렸다. 탁자가 박살 나고 식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소설은 품에서 단검을 뽑아 들고 남궁휘의 사각인 왼쪽을 엄호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빠르고 은밀했다. 무공 수위가 높지는 않았으나, 치명적인 약점을 파고드는 데에는 천기각의 정보원다운 예리함이 있었다.

"길을 뚫겠소. 내 뒤를 바짝 따르시오."

남궁휘가 짧게 외치며 단전의 남은 내력을 쥐어짜 끌어올렸다. 검신에 옅은 청강(靑罡)이 서렸다. 비록 한 줌뿐인 내력이었으나, 그의 기백은 오히려 태산처럼 무거웠다. 남궁휘가 앞을 막아선 살수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피와 살점이 튀는 혼전 속에서, 그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혈영회 살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콰당탕!

문살을 부수고 어둠이 짙게 깔린 동관의 밤거리로 두 사람이 빠져나왔다. 찬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그러나 안도할 틈은 없었다. 추격자들의 기척이 등 뒤로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었다. 신호탄이 밤하늘로 쏘아 올려지며 붉은빛이 거리를 물들였다. 동관 전체에 깔린 혈영회의 점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남궁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잘려 나간 왼팔의 단면이 불에 덴 듯 욱신거렸다. 무리하게 내력을 끌어 쓴 탓에 단전이 비명을 질렀다.

'아직이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청운은 화룡동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종남산 태백봉(太白峰)까지 남은 거리는 삼백 리(三百 里). 피비린내 나는 동관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