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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장. 태백심곡의 독장 (太白深谷之毒瘴)

동관(潼關)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꼬박 사흘을 달렸다. 종남산(終南山)의 웅장한 산세가 시야를 가득 채웠을 때, 일행의 발걸음이 멎은 곳은 인적이 완전히 끊긴 깎아지른 절벽 앞이었다.

태백심곡(太白深谷). 천년화수목(千年花樹木)이 자라난다는 전설 속의 계곡이자, 거대한 천년백사(千年白蛇)가 똬리를 틀고 있는 죽음의 구덩이.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짙은 녹색과 보랏빛이 기괴하게 섞인 안개로 겹겹이 덮여 있었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짐승의 숨결처럼 느릿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저것이 천년백사가 내뿜는 독장(毒瘴)인가……."

남궁휘(南宮煇)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른팔 끝에 묶어둔 검신(劍身)이 무겁게 떨렸다. 벼랑 끝에 서 있기만 해도 피부가 따갑고 호흡이 답답해졌다. 내공이 반도 남지 않은 현재의 그로서는 저 독안개 속에서 반 시진(半 時辰)도 버티기 어려웠다.

소설(小雪) 역시 안색이 창백해졌다. 천기각의 정보원으로서 숱한 험지를 보았으나, 대자연의 천년 묵은 독기 앞에서는 인간의 지혜가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짐짓 뒤로 물러서며 침을 삼켰다.

그때, 뒤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귀비(唐貴妃)가 붉은 연죽(煙竹)을 물고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그녀는 주저 없이 벼랑 끝으로 다가가더니, 코를 찌르는 독장의 기운을 들이마시듯 깊게 숨을 들이켰다.

"미쳤소?!" 남궁휘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당귀비는 멀쩡했다. 오히려 독기를 머금은 그녀의 창백한 뺨에 옅은 홍조가 돌았다. 사파(邪派)로 타락한 사천당가에서 멸문지화를 겪으며 살아남은 그녀다. 어린 시절부터 수만 가지 맹독을 제 몸에 직접 주입하며 뼈와 살을 깎아낸 결과, 그녀의 육신은 어지간한 독으로는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는 만독불침(萬毒不侵)에 가까운 내성을 지니게 되었다. 새까맣게 죽어 있는 그녀의 열 손가락 손톱이 그 잔혹한 수련의 증거였다.

"사천당가의 혈주(血蛛) 앞에서 독을 논하다니, 지렁이 주제에 건방지네." 당귀비가 연죽을 털며 품에서 검은 환약 두 개를 꺼내 남궁휘와 소설에게 던졌다. "먹어. 내 피를 섞어 만든 만응해독단(萬應解毒丹)이야. 저 안개 속에서 두 시진은 버티게 해줄 테니까."

남궁휘와 소설이 환약을 삼키자, 곧바로 단전에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퍼지며 폐부를 짓누르던 답답함이 가셨다.

"길은 내가 연다. 너희는 내 뒤나 졸졸 따라와."

당귀비가 벼랑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녀의 자줏빛 치파오가 독장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남궁휘와 소설도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경공을 펼쳐 심곡의 어둠 속으로 뛰어내렸다.

계곡 바닥에 닿자, 빛이 완전히 차단된 암흑이 일행을 덮쳤다. 시야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고, 발밑은 썩은 잎과 정체 모를 뼈 무더기로 질척거렸다. 시각이 무용지물이 된 이 지옥에서,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소설이었다.

스르릉.

소설의 손목에서 아주 미세한 금속음이 울렸다. 그녀가 팔을 뻗자,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특수 합금 실, 청음사(聽音絲)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어둠 속의 나무와 바위들에 거미줄처럼 엮였다.

소설이 눈을 감고 검지 손가락에 감긴 실의 팽팽함을 조절했다. 이내 실을 타고 미세한 진동이 그녀의 감각으로 전해져 왔다. 시야 대신 '진동'으로 주변 지형과 기척을 꿰뚫어 보는 천기각의 초정밀 레이더가 가동된 것이다.

"전방 오십 보 앞, 거대한 바위 무더기. 우측은 늪지대입니다." 소설이 낮고 빠르게 읊조렸다. "그리고…… 전방 백 보 지점부터, 바닥을 기어 다니는 불규칙하고 육중한 진동이 수십 개 감지됩니다. 뱀 떼입니다. 그것도 아주 큰."

"호오, 눈을 감고도 훤히 보는구먼? 천기각 아가씨, 꽤 쓸모가 있네."

당귀비가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양손에 무쇠로 된 구형 암기(혈폭우)를 쥐었다.

"독장 탓에 저 지렁이 새끼들 외피가 꽤나 질길 텐데, 네 칼로 썰 수 있겠어?" 당귀비가 남궁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남궁휘는 오른팔 절단면에 단단히 결박된 검 자루의 매듭을 고쳐 조였다. 내력을 아껴야 했다. 그가 뽑아 들어야 할 단 한 번의 살검(殺劍)은 오직 천년백사의 역린을 향해야만 했다.

"잔챙이들에게 검을 낭비할 여유는 없소."

"마음에 드는 대답이야."

당귀비의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졌다. 소설이 엮어둔 청음사의 진동이 거칠어지며,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 수십 개가 일행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독사 무리였다.

"잔챙이 청소는 당가(唐家)의 전공이지."

당귀비가 양손의 혈폭우를 어둠 속으로 내던졌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맹독의 화염이 태백심곡의 어둠을 눈부시게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