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장. 빙각의 지배 (氷刻之支配)
숭산(嵩山) 화룡동(火龍洞)의 붉은 광석이 파리하게 명멸하고 있었다.
열흘. 화룡진인(火龍眞人)이 예고했던 시한의 마지막 날 해가 저문 지 오래였다. 석상에 뉘어진 청운(靑雲)의 몸은 이미 산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피부에는 옅은 성에가 덮였고, 심장의 고동은 반 시진(半 時辰)에 한 번 간신히 뛰어오를 만큼 미약했다. 화룡진인이 꽂아둔 아홉 개의 금침마저 한기에 얼어붙어 검게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여기까지인가."
화룡진인이 탄식하며 청운의 심장 위로 손을 뻗었다. 마지막 금침을 뽑아 그의 고통을 덜어주려던 찰나였다.
쿵-!
동굴 입구를 막아둔 거대한 암석이 벼락 맞은 듯 박살 나며 흩어졌다. 먼지구름을 뚫고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은 거친 짐승의 숨소리였다.
"아직…… 숨은 붙어 있소?"
피투성이가 된 남궁휘(南宮煇)였다. 그의 잘려 나간 오른팔 끝에 결박된 검 자루는 뱀의 피와 이물질로 떡이 되어 있었고, 전신은 찢어지고 타버린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그의 등 뒤로는 소설(小雪)이 귀한 옥함(玉函)을 품에 안은 채 서 있었고, 그 옆에는 낯선 자줏빛 치파오의 여인, 당귀비(唐貴妃)가 피 묻은 연죽을 털며 짝다리를 짚고 있었다.
"가져왔습니다." 소설이 거친 숨을 고르며 옥함을 진인 앞에 내밀었다. "천년화수목의 진액과…… 천년백사의 내단입니다."
화룡진인의 눈이 옥함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광채에 크게 뜨였다. 극양(極陽)과 극음(極陰)이 융합된 완벽한 천 년의 기연. 노인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물러서라!"
진인은 옥함의 진액에 백사의 내단을 으깨어 섞은 뒤, 주저 없이 청운의 벌려진 입술 사이로 흘려 넣었다.
순간, 동굴 안의 공기가 팽창했다.
"크으으윽-!"
사흘 내내 미동조차 없던 청운의 입에서 짐승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의 피부 위를 덮고 있던 하얀 성에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더니, 이번에는 전신의 혈관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천 년을 묵은 극양의 영약이 경맥 깊숙이 뿌리내린 빙각의 한기를 정면으로 타격한 것이다. 청운의 몸 안에서 불과 얼음이 충돌하며 끔찍한 파음을 냈다. 그의 몸이 석상 위에서 활처럼 휘어졌다.
"터진다! 기운이 육신을 감당하지 못해!"
당귀비가 놀라 뒤로 물러서며 붉은 채찍을 방어 자세로 감았다. 만독불침인 그녀조차 피부가 찢어질 듯한 기류의 충돌이었다. 남궁휘는 검을 묶은 팔을 들어 소설을 보호하며 눈을 부릅떴다.
'견뎌라. 여기서 죽을 목숨이 아니다.'
청운의 의식은 거대한 불구덩이와 심연의 얼음 바닥을 오가고 있었다. 밖에서 주입된 극양의 기운이 그의 경맥 깊숙이 뿌리내린 빙각의 한기를 미친 듯이 태우고 있었다. 고통은 뼈를 으깨고 뇌수를 끓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청운은 자신의 단전 아래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빙각 한기의 '본질'을 마주했다.
그것은 단순한 병마가 아니었다. 하늘이 내린 저주이자,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파괴적인 '그릇(體)'이었다.
'불태우지 마라.'
청운은 속으로 읊조렸다. 그는 극양의 기운을 밀어내는 대신, 자신의 의지를 끌어올려 그 폭발하는 기운을 억지로 짓눌렀다.
'녹여서, 내 것으로 삼는다.'
콰아아아앙-!
청운의 단전에서 푸른빛과 붉은빛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폭발했다. 동굴의 붉은 광석들이 일제히 빛을 잃으며 바스라졌고, 무겁게 짓누르던 기압이 순식간에 진공 상태로 빨려 들어갔다.
먼지가 가라앉은 동굴 한가운데.
석상 위에서 몸을 일으킨 청운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두 눈동자 깊은 곳에 시퍼런 한기(寒氣)가 벼려진 칼날처럼 서려 있었다. 파리했던 안색은 백옥처럼 매끄럽고 단단하게 빛났고, 그가 내쉬는 숨결 하나에 동굴 바닥의 수분이 얼어붙어 얇은 얼음꽃을 피워냈다.
단순히 한기를 치료한 것이 아니었다. 극양의 기연을 매개로 빙각의 저주를 온전히 길들여, 자신의 내공으로 흡수해 버린 자.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이룬 극음(極陰)의 지배자가 마침내 눈을 뜬 것이다.
청운이 가볍게 손을 쥐었다 펴자, 허공에서 미세한 파음이 울렸다. 그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일행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상처투성이인 남궁휘, 안도감에 주저앉은 소설, 그리고 흥미로운 듯 턱을 괴고 있는 당귀비까지.
"늦지 않아…… 다행이오."
청운의 목소리는 고요하고 깊었다. 병자의 쇳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남궁휘가 잘려 나간 오른팔 끝에 묶어둔 검을 천천히 거두며 픽 웃었다.
"목숨값은 톡톡히 치르시오."
사선을 넘나든 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거친 미소가 일행의 입가에 번졌다. 기나긴 도망자의 시간은 끝났다. 극음의 기운을 남김없이 지배하게 된 청운과, 살검을 완성한 남궁휘, 그리고 사파로 타락한 폭렬 암기의 주인까지 합류한 이들에게 이제 망설임은 없었다.
그들의 눈길은 이미 썩어빠진 중원의 중심, 낙양(洛陽)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