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철검혈사 (鐵劍血事)
낙양 북쪽,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에 자리 잡은 철검문(鐵劍門)은 평소 강직한 기풍으로 이름난 소문파였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철검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곧은 심성을 지녔기에, 주변 백성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 남은 것은 서늘한 죽음의 정적뿐이었다. 산문(山門)의 편액이 반으로 쪼개진 채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한때 정갈하게 쓸렸을 마당에는 핏자국이 무수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청운과 남궁휘가 산문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그들을 맞이한 것은 코끝을 찌르는 진득한 혈향(血香)이었다.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그 냄새는 뚜렷했으며, 마치 땅 자체가 피를 머금고 숨을 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이럴 수가... 이건 무인이 저지른 짓이 아니오. 이건 학살(虐殺)이오!"
남궁휘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외쳤다. 연무장 바닥에는 철검문의 제자 수십 명이 널브러져 있었다. 기이한 점은 그들의 시신 어디에도 깨끗한 자창(刺創)이나 도상(刀傷)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뼈가 가루가 되도록 짓눌리거나, 장기가 파열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했다. 검이나 도로 다투었다면 있어야 할 방어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그리고 순식간에 벌어진 도륙이었다.
청운은 묵묵히 시신 한 구 앞에 무릎을 굽혔다. 그는 죽은 이의 가슴팍에 남은 거대한 손바닥 자국을 유심히 살폈다. 손가락 다섯 개의 자국이 갈비뼈를 움켜쥔 형태로 깊이 파여 있었는데, 그 힘은 범인의 것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초인적이었다.
"외공(外功)에 의한 타격이 아니오. 내력을 폭발시켜 안에서부터 터뜨린 것이군."
청운이 시신의 혈도(穴道)를 짚자, 상처 부위에서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피라기보다는 썩은 물에 가까운 색깔이었고, 고약한 악취를 풍겼다.
"흑혈(黑血)... 만마단의 부작용이 확실하군. 복용자가 이성을 잃고 폭주하며 내뿜은 강기에 당한 것이오."
남궁휘는 구역질을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파의 명문가에서 자란 그에게 이런 지옥도(地獄圖)와 같은 광경은 생전 처음이었다. 잡고 있던 창궁검의 자루를 감싼 손이 분노로 하얗게 질렸다.
"혈영회... 감히 낙양의 코앞에서 이런 만행을 저지르다니! 무림맹은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그때, 파괴된 대전(大殿)의 불상 뒤편에서 미세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가 불상 뒤에서 끌어낸 것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어린 소년 제자였다. 열두세 살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 핏빛과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살려... 살려주세요... 괴물이... 괴물이 나타났어요..."
소년은 실성한 듯 중얼거렸다. 남궁휘가 급히 다가가 소년에게 내공을 주입하며 진정시켰다. 창궁무애검법의 양강(陽剛)한 내력이 소년의 몸을 따스하게 감싸자, 미세하게나마 떨림이 가라앉았다.
"얘야, 정신 차리거라!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 혈영회의 자객들이냐?"
소년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인간이 아니었어요. 분명 철검문의 대사형이었는데... 갑자기 몸이 두 배로 부풀어 오르더니, 눈이 뒤집히고... 사방을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했어요. 사부님도... 사부님도 한 주먹에..."
소년의 증언에 비실 안의 공기가 차갑게 식었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동료가 만마단에 중독되어 괴물로 변해 문파를 도륙했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 끔찍했다. 남궁휘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이 약이 중원 곳곳에 퍼져 있다면, 어느 문파건 안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청운의 시선이 대전 바닥에 남은 거대한 발자국을 향했다. 돌바닥이 움푹 패일 만큼 깊이 찍힌 발자국은 숲의 더 깊은 곳, 혈영회의 은밀한 실험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쪽 계곡으로 향하고 있었다.
"적은 밖이 아니라 안에도 있군. 혈영회는 이미 중원의 소문파들에 만마단을 은밀히 유통하고 있는 것이오. 제자들을 고수로 만들어준다는 감언이설로 말이오."
청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는 검을 고쳐 매며 북쪽 숲을 응시했다.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스치며 서늘한 소리를 냈다.
"남궁 소협, 맹에 보고를 서두르시오. 나는 저 발자국을 쫓겠소. 괴물이 된 자를 멈추지 않으면, 제2, 제3의 철검문이 나올 것이오."
남궁휘는 잠시 갈등하는 듯했으나, 곧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맹에 전령을 보내고, 나는 남궁세가의 가신들을 소집하겠소. 그전까지는... 죽지 마시오, 청운."
짧은 말이었으나 그 속에 담긴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짧은 시선을 교환한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청운의 신형이 어두운 숲속으로 사라질 때, 숲 저편에서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기괴한 포효(咆哮)가 울려 퍼졌다. 대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던 새 떼가 일제히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