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NOVEL

제7장. 혈광의 괴수 (血狂之怪獸)

달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울창한 대나무 숲.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대잎이 부딪히는 서늘한 소리와,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들이 서로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그 사이로 엉킨 그림자가 마치 수천 개의 팔을 가진 귀물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청운은 보폭을 줄이며 기척을 살폈다. 그의 코끝을 스치는 것은 쇠락한 문파의 향기가 아닌, 썩은 고기와 피가 뒤섞인 악취였다. 발끝에 전해지는 지면의 진동이 불규칙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거운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때, 전방의 거대한 대나무 대여섯 그루가 단번에 꺾이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악!"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형상이었다. 철검문의 대사형이었던 철무진(鐵武振). 한때 강직한 무인으로 칭송받던 그의 신체는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라 장포가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피부 아래로는 검은 혈관들이 지렁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근육이 기괴하게 뒤틀린 양팔은 허벅지보다 굵었으며,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초점 없는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광기였다. 이 자가 동문의 형제를, 사부를 제 손으로 찢어 죽였다는 사실이, 그 빈 눈동자 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철무진이 바닥을 박차며 도약했다. 그가 머물던 자리가 깊게 패어 나갔다. 거대한 바위 같은 주먹이 청운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콰아앙!

청운은 신형을 비틀어 간발의 차로 피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있던 아름드리 대나무들이 수박 깨지듯 박살 났다. 단순한 완력이 아니었다. 만마단에 의해 폭주한 내공이 주먹 끝에서 강기(罡氣)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청운의 볼을 스쳤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한 줄기 피가 흘렀다.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되었군... 가련하구나."

청운의 검이 칼집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그는 내공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화려한 초식 대신 정밀한 일격에 집중했다.

"낙엽검법(落葉劍法) 삼수(三手) - 엽로(葉路)!"

청운의 검이 철무진의 관절과 혈도를 자르듯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검이 닿는 순간 철무진의 검은 피부는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해 검날을 튕겨냈다. 만마단이 근육과 골격을 기괴하게 강화시킨 결과였다. 검신을 타고 전해지는 반탄력에 청운의 손목이 저렸다.

철무진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의 손톱은 맹수의 발톱처럼 길어져 청운의 가슴팍을 할퀴려 들었다. 청운은 청산심법(靑山心法)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대나무 사이를 누비며 철무진의 맹공을 흘려내는 그의 보법은 민첩했으나, 매 순간 내력이 깎여나가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내공이 바닥나기 전에 끝내야 한다."

청운은 검을 수평으로 눕히고 발끝으로 지면을 찼다. 대나무 숲의 그림자 속으로 그의 신형이 녹아드는 듯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남은 내력을 하나의 점으로 모았다.

"낙엽검법 비기(秘技) - 낙엽귀근(落葉歸根)!"

이 초식은 흩날리는 낙엽이 결국 뿌리로 돌아가듯, 모든 힘을 한 점에 응축하여 상대의 급소를 관통하는 필살의 일격이었다. 청운의 검신에서 푸른 강기가 응축되며 가느다란 실선(絲線)을 그렸다. 검 끝에 맺힌 빛이 별처럼 작고, 그러나 태양처럼 밝았다.

철무진이 포효하며 양팔을 벌려 달려드는 순간, 청운의 검이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쉬익!

교차하는 두 그림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철무진의 거대한 신형이 우뚝 멈춰 섰다. 그의 가슴 한복판, 검은 혈관이 가장 조밀하게 모여 있던 곳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커... 헉..."

철무진의 눈에서 핏빛 광기가 서서히 걷혔다. 그 아래 드러난 것은 한때 무인이었던 자의 맑은 눈동자였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 동문의 피로 물든 그 손을 —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 부... 님..."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거구의 신체가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검은 액체를 쏟아냈다. 동시에 그의 몸을 지탱하던 만마단의 기운이 빠져나가자, 시신은 급격히 미라처럼 말라붙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무인이 한 알의 약으로 괴물이 되고, 끝내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비극이 대나무 숲 한가운데서 끝을 맺었다.

청운은 검에 묻은 검은 피를 털어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단 한 번의 비기였으나, 남아있던 내공의 절반 이상이 소진되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대나무에 몸을 기대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박수를 치며 걸어 나왔다.

"과연 낙엽검법의 정수로군. 청성파가 그런 인재를 버리다니, 역시 정파 놈들의 안목이란 믿을 게 못 돼."

청운은 즉각 검을 고쳐 쥐었다. 연기처럼 나타난 인물은 흑색 도포에 기괴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적영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깊고 서늘한 마기(魔氣)를 풍기는 자였다. 가면의 이목구비는 웃는 형상이었으나, 그 미소가 오히려 소름을 돋게 했다.

"혈영회... 주군인가?"

청운의 물음에 가면의 사내는 소리 없이 웃었다.

"주군을 뵙기엔 자네의 경지가 아직 부족해 보이는데. 나는 그저 자네라는 '낙엽'이 어디까지 굴러가는지 구경하러 온 관객일 뿐이라네."

사내는 손가락을 튕겼고, 그 순간 청운의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코끝에 달콤하면서도 썩은 듯한 향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사내가 뿌린 기괴한 독향(毒香)에 중독된 것이었다. 내공이 소모된 상태의 청운은 저항할 힘이 부족했다. 검을 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잠시 잠들어 있게나. 다음 무대는 낙양의 한복판이 될 테니."

청운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