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청산불변 (靑山不變)
낙양의 지하 수로는 거대한 미로와 같았다. 썩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 쥐들의 찍찍거리는 소리 사이로, 날카로운 파공성(破空聲)이 울려 퍼졌다. 벽면의 이끼가 발하는 희미한 인광(燐光)만이 유일한 빛이었고, 발목까지 차오르는 냉수 속에서 매 걸음이 전투였다.
"남궁 소협, 왼쪽에서 세 명! 제 암기가 길을 열 테니 바로 찌르세요!"
소설이 손목을 가볍게 휘두르자, 소리 없이 날아간 세 개의 은침(銀針)이 어둠 속에 숨어있던 혈영회 무인들의 혈도를 정확히 꿰뚫었다. 천기각에서 익힌 암기술의 진수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남궁휘의 창궁검이 은빛 궤적을 그리며 내질렀다.
서걱!
피가 냉수에 떨어지며 붉은 물결이 퍼져나갔다. 남궁휘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천기각의 정보대로군. 지하 수로가 이토록 조직적으로 개조되어 있을 줄이야. 혈영회가 언제부터 이 밑에 둥지를 튼 거지?"
두 사람은 소설의 예민한 감각에 의지해 청운의 기운이 느껴지는 '만마혈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소설은 벽면에 손을 대어 기의 흐름을 더듬으며 방향을 잡았고, 남궁휘는 그녀의 뒤를 지키며 습격해 오는 혈영회 무인들을 베었다. 명문세가의 도련이 기루의 소녀에게 뒷길을 맡기는 기이한 조합이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석조 제단 위의 청운은 죽음보다 깊은 고통 속에 잠겨 있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무영마의 마기는 그의 단전(丹田)을 끊임없이 부식시키고 있었다. 경맥의 곳곳이 마기에 잠식되어 검게 변했고, 청산심법의 푸른 기운은 이미 구석으로 몰려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제단 위의 핏물과 섞여 기묘한 무늬를 그렸다.
'청산(靑山)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구름에 가려져도 그 본연의 색을 잃지 않는다.'
문득 사부가 파문 직전에 들려주었던 구절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자신을 내치면서 그런 말을 남겼는지. 지금까지 청운은 청산심법을 그저 유장하게 흐르는 내공의 운용법으로만 여겼다. 마기에 맞서려면 더 강한 힘으로 밀어내야 한다고, 더 빠르게 더 많은 내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마기에 잠식당하는 극한의 순간, 그는 깨달았다.
산은 구름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구름이 스스로 흩어지게 하는 것임을. 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산은 흔들리지 않는다.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산은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산은 싸우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그것이 사부가 남기고자 했던 청산심법의 진의(眞意)였다.
'나의 내공이 산이라면, 마기는 한낱 지나가는 안개일 뿐.'
그가 마음을 비우고 내면의 산을 세우자, 요동치던 단전이 기적처럼 고요해졌다. 구석에 몰려있던 푸른 내기가 마기를 밀어내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정화하기 시작했다. 검게 물들었던 경맥이 한 올 한 올 제 빛을 되찾아갔다. 마기가 녹아 사라진 자리에는 이전보다 더 깊고 투명한 내력이 채워졌다. 청산심법의 경지가 화경(化境)의 문턱, 즉 초절정(超絶頂)의 입구에 다다른 것이다.
콰드득!
청운의 몸을 묶고 있던 만년한철 쇠사슬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한 마디 한 마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때, 제단의 육중한 문이 부서지며 소설과 남궁휘가 들이닥쳤다.
"청운 소협!"
"이놈들, 당장 그 손을 떼라!"
무영마는 당황한 기색 없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제단 주위의 핏물이 솟구치며 기괴한 장벽을 형성했다. 핏물 장벽 안에서 수천 개의 얼굴 형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곳에서 제물이 된 자들의 원혼이었다.
"끈질긴 쥐새끼들이로군. 하지만 늦었다. 이미 제물은..."
무영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단 위에서 폭발적인 푸른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콰아앙!
쇠사슬이 조각나 사방으로 튀었고, 핏물 장벽은 푸른 빛에 닿자마자 수증기가 되어 흩어졌다. 원혼들의 형상이 푸른 빛 속에서 평온한 표정으로 소멸해 갔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천천히 일어난 청운의 눈동자는 깊고 푸른 산을 담은 듯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이전의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과는 달리, 산 정상의 호수처럼 맑고 깊었다.
"무영마, 안개는 걷힐 때가 가장 비참한 법이지."
청운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검도 없었지만,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劍氣)가 무영마의 가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면이 반으로 쪼개지며 드러난 무영마의 안색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내, 내 마기를 정화했다고? 불가능해! 청성파의 무공 따위가 어떻게...!"
청운은 비틀거리는 소설을 부축하며 남궁휘를 바라보았다.
"남궁 소협, 늦지 않았구려. 이제 낙양의 안개를 걷어낼 차례요."
세 사람의 시선이 공포에 질린 무영마를 향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깨어난 용이, 드디어 승천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